[청사초롱-이기호] 신춘문예 시즌

국민일보

[청사초롱-이기호] 신춘문예 시즌

입력 2017-11-2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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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곳은 이번 주, 대부분은 다음 주 안으로 신춘문예 접수 마감이 이루어진다. 혹 집안에 신춘문예 응모자가 있다면, 이번 주는 아예 ‘없는 주’라고 생각하는 게 좋은데, 최고치로 예민해진 응모자의 감정과 정서불안을 가족 구성원이 고스란히 함께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수능 학부모 노릇을 한 번 더 하고 말지. 그런 자조의 말을 하는 가족들을 만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한데, 요즈음은 또 그 양상이 변했다. 문단 말석에 있는 처지라 그 어렵다는 신춘문예 예심에 몇 번 끌려 나갔다가 목격한 사례인데, 20, 30대 응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예전 신춘문예와 달리 근래에는 40대 50대, 심지어는 70대 어르신 응모자들의 숫자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말인즉슨 이제 집안의 아버지 어머니가 수능 응시자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상황을, 그 자식들이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식이 까칠하게 말도 하지 않고 예민하게 신경질을 부리면 야단이라도 한 번 쳐볼 텐데, 부모님이 그러면 답이 없는 것이다(그 자식들은 문학을 미워하게 된다). 참고로 작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는 70대 어르신이 당선되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나 생각해 보면, 그에 따른 여러 대답이 나온다. 우선, 첫 번째로 나올 수 있는 대답은 ‘문학의 접근성’에 관한 것이다. 문학이라는 예술이 그만큼 누구에게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대답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문학만큼 출신 대학이나, 학력, 전공을 따지지 않는 예술은 드물다. 그만큼 전문적인 교육기관의 학위보다 ‘작품’을 먼저 본다는 증거이다.

또 사실 만만한 게 문학이기도 하다.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이다 보니 친숙하기도 하고, 재료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영화감독 지망생들에게 진지하게 조언한다. 괜히 제작비 때문에 골머리 앓지 말고 문학으로 넘어들 오시라. 문학에선 A4용지 한 권만 갖고 있으면 지구를 폭발시킬 수도 있다. 그거 오천 원이다). 시도하다가 실패한다고 해도 인생의 커다란 오점으로 남지 않는다. 그러니 해마다 천 명 넘는 응모자가 한 신문사에 작품을 접수하는, 진풍경을 연출하는 것이다.

둘째는 ‘사회적 환경’ 문제도 있다. 한창 직장에서 일하고 있어야 할 50, 60대가 왜 신춘문예에 응모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을까, 함께 심사에 참여했던 한 작가에게 물으니, 그건 이웃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말을 들었다(일본은 출판사 작품공모에서 그런 일이 많이 벌어진다고 한다). 말하자면 직장에서 타의로 밀려난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이 다시 제2의 인생을 꿈꾸면서 신춘문예에 도전한다는 해석이다.

나는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울분과 실의에 빠져 좌절하느니, 복수한다는 심정으로 글을 쓰는 것도 정신건강엔 도움이 될 것이다(실제로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은 이 사회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처음 문학을 시작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잊고 있었던, 숨겨져 있던 자신의 예술가적 자질을 발견한다는 것은 축복이지,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신춘문예 현상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얘기해주었더니, 아이 씨, 젊은 사람들하고 경쟁하기도 바쁜데 어른들까지 그러면 우린 어떡해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하나 없다. 문학은 결코 ‘나이’나 ‘경험’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자기’와 멀어지기 위해서 하는 장르이다. ‘자기’ 외에 ‘타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예술이 문학이다. 그래서 오히려 ‘경험’을 쓰는 것은 독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응모자들을 위한 팁 하나 던져주면서 이 지면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촛불’이나 ‘적폐’에 대해선 가급적 쓰지 마시라. 그거, 다른 사람들도 많이 쓴다. 다시 말하지만 문학은 ‘경험’을 말하는 장르가 아니다. ‘차이’를 인식하게 하고 저기 다른 사람이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문학이다. ‘작품’만 본다.

이기호(광주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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