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이국종·권영환의 절반만이라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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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이국종·권영환의 절반만이라도 해라

입력 2017-11-2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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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병사의 귀순 사건은 여러 가지로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적확하게 드러낸다. 전율을 일으켰던 이 한 편 영화의 주인공은 귀순 병사와 중증외상전문의 이국종 아주대 교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장 권영환 육군 중령이다. 대한민국 상황을 콕콕 찍어주는 ‘허접한 조연’들도 등장한다.

이국종은 총탄 5발을 맞고 의식불명인 북한 병사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기생충과 분변을 얘기했다. 의사 경험으로서 보기 드문 환자의 상태였다. 그는 전문가 시각으로 전문가 영역을 전문가 언어로 충실하게 설명했다. 그걸 진보 진영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북한 인권이란 잣대를 들이대 해석하고 분석하고 떠벌렸다. 정치가 아무리 편싸움이고 이를 위해 유리한 프레임을 갖다 쓰는 행위라 하더라도 들이댈 게 있고, 그렇게 하면 옳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를 구별하는 걸 우리는 상식 또는 정상이라고 한다. 그 의원은 평소 군 내부의 뿌리 깊은 적폐를 날카롭게 지적하곤 했다. 그런데 역시 북한 문제만 나오면 이성적 사고가 작동 중지되는 그쪽 동네 일부의 고질을 갖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국종은 죽음과 삶의 경계인 회색지대에서 불굴의 의지로 버티는 전문가다. 입만 갖고 떠드는, 컴퓨터 자판만 갖고 노는 무책임한 이들과는 다르다.

동서 800m, 남북 400m의 공동경비구역은 비무장지대가 아니다. 24시간 무력충돌 가능성이 상존한다. 귀순 당시 왜 즉각 대응사격하지 않았느냐는 비난이 보수 진영과 국회의원들로부터 나왔다. 유엔사가 밝힌 당시 동영상에는 총격 시간이 30초가 채 안 된다. 이들의 주장대로 하면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상황 판단 없이 그냥 쏘란 얘기다. 총탄이 넘어오긴 했지만 당시 상황은 직접 우리 진지나 병사들을 향한 조준 사격이 아니다. 현장 지휘관과 병사들의 순간적 판단을 요하는 상황이었다. 몇 배로 강경 응징해야 할 연평도 포격이나 목함지뢰 같은 도발이 아니었다. 그들은 목숨 건 귀순 사건을 못마땅한 진보 정권의 대북 유화적 태도라는 프레임으로 엮고 싶은 것이다. 정확한 상황 판단보다는 강경 대응만이 애국이라는 단선적 시각과 비전략적 사고만 횡행한다. 대대장 권영환은 신중하게 상황 판단을 잘했고, 훈련된 지휘관답게 노련한 부사관 2명을 이끌고 적의 사정거리 안으로 진입, 구출작전을 폈다. 본인이 후위에서 포복하고 부사관을 앞으로 보낸 것도 적절한 조치였다. 권영환도 생과 사를 가를 수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전투 전문가로서, 부대 지휘관으로서 현장판단을 했을 게다. 입만 갖고 즉자적 대응만을 주장하는 이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이국종, 권영환은 그때 그 자리에서 무한 책임감을 갖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뤘던 전문가들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전문가들이 많다. 이들의 식견과 판단, 그 판단에 따른 행위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문제는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끌고 가려는 ‘악성 프레임’이다. 악성 프레임으로 무장한 목소리 큰 사람들이 군림하는 게 정치 현실이다. 그러니 이국종이 병원 당국에 불려가 주의를 듣고, 권영환의 판단과 조치에 왜 안 쐈느니 하며 틈만 나면 뒷덜미 잡기에 골몰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합리적 개선안을 찾기보다는 상대편에 대한 강한 적대감 표현이 더 대접받는 풍토로는 정치가 나아질 수 없다. 두 사람의 행위에 자의적 분석을 덧붙여 적대적 공격을 해대는 정치는 참으로 찌질하다.

이국종, 권영환류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헌신성과 책임감으로 버티고 있기에 이 나라가 그래도 이만큼 지탱해 나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이런 이들은 정치가 뭐라 한들 주눅들 필요가 전혀 없다. 정치의 본질과 기능상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악성 프레임은 이제 건전한 상식에 의해 점차 제압돼 가고 있다. 정치에 능숙하지 않은 상식 있는 전문가들을 응원한다. 정치가, 권력이 이국종이나 권영환의 절반만이라도 해줬으면 세금 낼 때 기분이 좋겠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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