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설명서] 세습과 계승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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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설명서] 세습과 계승 사이

입력 2017-12-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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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취재 때마다 목사님께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자녀의 직업은 뭡니까?” 목사, 선교사, 사모라는 답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경우 목회자 부부가 교회와 가정에서 모범적인 삶을 보여줬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몇 년 전 인도에서 열린 선교사대회 때 일입니다. 목회자 집안에서 자란 대형교회 모 목사가 주 강사로 나섰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200여명의 선교사들은 팔짱을 끼고 ‘네가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자’며 앉아 있었습니다.

상황은 5분 만에 반전됐습니다. 선교사들은 두 팔 벌려 눈물 콧물 흘리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신앙의 1대에선 쉽게 끌어낼 수 없는 깊이 있는 찬양과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부친 목사에게 어깨너머로 물려받은 영적 저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수의 목회자들이 목회 임지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세습 이슈가 더욱 확산되고 있습니다. 목회 세습이 어떤 것이기에 교회 안팎에서 이토록 반대하는 걸까요.

목회 세습은 북한 3대 세습처럼 검증되지 않은 자녀에게 비민주적 절차를 통해 교회권력과 부를 대물림하는 것입니다. 반면 계승은 자격을 갖춘 자녀가 선대의 영적 유산을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개념이죠.

세습과 계승은 결과에서 차이가 납니다. 서울 A교회가 대표적 예입니다. 부친 목사는 영성이 부족한 아들에게 교회를 넘겨준 실수를 참회했습니다. 교회는 세습 여파로 과거의 명성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경기도 성남 B교회, 고양 C교회, 충남 공주 D교회, 경북 포항 E교회는 목회 리더십을 안정적으로 계승한 케이스입니다. 영성과 실력을 갖춘 아들 목사는 선대의 사역을 발판삼아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교회공동체를 일궜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듭니다. 영성과 인품이 훌륭한 아들 목회자가 아버지의 헌신적 삶을 따르고자 시골 교회를 맡았다면 그것도 세습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요. 반대로 실력도 안 되는 자녀에게 억지로 시골 교회를 물려줬다면 그것은 세습일까요, 아닐까요. 산골 교회를 중대형 교회로 바꿨을 땐 또 어떻게 될까요. 결과적으로 세습은 교회 크기와 상관없이 영성과 실력이 부족한 자녀를 후임자로 세울 때 발생합니다. 후임자의 자질과 청빙 과정의 투명성이 세습 판별의 핵심기준이라는 말입니다.

일부 교단은 ‘세습방지법’을 통과시키며 세습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은퇴목사의 직계비속,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 시무장로의 직계비속 등을 청빙금지 대상에 기계적으로 포함시켰습니다. 미자립 교회는 예외로 하고 말입니다.

세습방지법은 세습의 기준을 가족관계와 교회 크기에 둡니다. 적법한 절차나 후임자의 영성, 됨됨이는 고려사항에 끼지도 못합니다. 그렇다보니 세습은 중대형교회에서만 벌어지게 돼 있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작든 크든 다 같은 교회인데 말이죠.

말은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종교편향, 성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용어 속엔 특정종교의 기독교 공격, 부도덕한 성 중독의 합리화, 이단종교의 병역기피 정당화 논리가 숨어있습니다. 언어를 통해 대중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종의 용어 전술이죠.

편향적 세습논리는 건전한 계승까지도 세습으로 매도합니다. 교회 사랑의 순수한 마음에서 계승을 선택한 성도들마저 세습을 도운 거수기로 낙인찍습니다. 세습과 계승이 뒤죽박죽 섞인 한국교회 상황을 제대로 보려면 눈을 좀 더 크게 떠야 할 것 같습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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