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온 국민이 안전한 나라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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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온 국민이 안전한 나라를 위해

입력 2017-12-2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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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려 왠지 을씨년스러운 크리스마스 이브, 충북 제천에서는 19명의 발인식이 진행됐다. 지난 21일 벌건 대낮에 발생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로 숨진 이들이다. 당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는 무려 29명. 크리스마스 데이에도 발인은 이어질 예정이다. 할머니와 딸 그리고 그 딸의 딸이 한꺼번에 참변을 당했고, 첫 가족 해외여행을 앞두고 가슴 설레던 엄마, 4년 장학생으로 수시 합격한 예비 대학생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사망자와 그 유족에게는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다.

2017년 말미에 터진 어처구니없는 대형 참사. 유족들에 따르면 그 피해는 줄일 수 있었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1시간가량 통화했다는 이도 있고, 세 차례 통화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소방당국이 구조작업을 조금 더 서둘렀다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방증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유족들의 외침은 커지고 있다. 초기 대응에 무능함을 드러낸 만큼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했다. 진화 현장에서 “2층 사우나에 사람들이 있으니 유리창을 깨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깨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소방당국도 초기 대응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다. 신고 접수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불법 주차된 차량을 빼내고, 고장 난 굴절사다리차를 다시 고정하느라 구조가 30분 이상 지연됐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구조가 지연되던 그 짧지 않은 시간, 불길과 유독가스에 휩싸인 건물 내에서 어떤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소방점검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20명이 숨진 여성목욕탕의 비상구는 제 기능을 상실했고,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관계당국의 안전점검이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문제는 더 있다.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건물의 내외장재는 불에 잘 타지 않는 자재를 쓰는 게 당연함에도 법망은 여전히 허술하다. 제천의 스포츠센터는 일명 스티로폼이라고 불리는 석유제품을 단열재로 사용했고, 1층 주차장 천장 부근의 스티로폼이 발화 지점이었다. 스티로폼의 불이 가연성 외장재인 건물 외벽을 타고 순식간에 번진 것이다. 내연성 자재 대신 값이 싸다는 이유로 스티로폼과 가연성 외장재를 사용한 대가는 너무나 혹독했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안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가연성 자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의무화해야 하고, 기존 건물에 대해선 정부 지원을 통해서라도 내외장재를 바꾸도록 유도하는 게 옳다.

국민들이 안전사고로 숨진 건 이번뿐이 아니다. 이달 초 인천 영흥도 인근 해상에서 낚싯배와 유조선이 충돌해 13명이나 사망했다. 공사장 타워크레인이 무너지는 잇단 사고로 이번 달에만 4명이 숨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이 주요 국정과제로 꼽히고,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효과적인 대책 마련과 집행은 아직 요원한 상태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국민들이 숨지거나 다치는 안전사고가 반복되면 분노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제천 화재 현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유족들이 “(대통령이)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셨는데, 이번엔 사람이고 뭐고 없었다”고 항의한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국가가 내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점점 확산되면 국가의 권위는 무너진다.

문재인정부가 국민 안전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쏟아야 할 때다.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를 정책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최근 표면화된 다중이용시설과 타워크레인, 낚싯배 사고는 물론 국민 안전과 관련된 모든 사안들을 꼼꼼히 점검하고 하나하나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 임기응변식 대책은 금물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정부조직을 개편하면서 국민안전처를 없애고 행정안전부에 흡수·통합했다. 온 국민의 안전한 삶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신설된 국민안전처를 폐지한 건 잘 이해되지 않는 결정이었다. 부처 속성상 안전이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안전 및 재난 업무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 챙겨봐야 한다.

한 청와대 참모의 언행은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겪이다. 대통령도 제천 참사에 대해 슬픔과 아픔을 함께 하고 있다는 정도에서 멈춰야 했는데, ‘국민을 위해 울어주는 대통령! 국민의 욕이라도 들어야 한다는 대통령! 국민 한 분 한 분에게 엎드리는 대통령!’이라며 칭송(?)한 건 과했다. 이 와중에 국민들이 ‘대통령 만세!’ ‘대통령 힘 내세요’라고 맞장구라도 쳐야 하는 건가. 해도 너무했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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