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책이 살렸다, 책을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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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책이 살렸다, 책을 살리자

입력 2017-12-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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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살던 내게 한 해가 저무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올해의 책’을 선정해 달라고 할 때다. 한 해 동안 읽었던 100여권과 구매한 책을 중심으로 추천 리스트를 고르고 고른다. 선정 기준 가운데 하나는 국내 저자의 것이다.

외국 저자들의 책 가운데는 빼어난 문장, 돋보이는 성찰, 전개 능력 등 감탄할 만한 작품이 많다. 최고의 책이라고 손꼽을 만한 것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국내 저자의 것을 고르는 것은 이 땅의 문제를 이 땅의 사람이 이 땅의 언어와 경험, 사유로 직면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정하면서도 그다지 즐겁지 않다. 사람들이 책을 도통 읽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출판사들이 몇 년 전에는 울상이더니 이제는 아예 죽을상이다. 이러다가 장례식 치르게 생겼다. 개신교회가 가톨릭이나 타 종교보다 출판사 수도 많고, 출간 종수도 견줄 수 없으리만치 월등하다. 그렇기에 독서량이 그리 밀리지 않을 테지만, 갈수록 심각할 정도로 독서량이 줄고 있다. 슬프다.

기독교를 일컬어 ‘이전에는 없던 책의 종교’라고 한다. 뛰어난 신약학자인 래리 허타도에 의하면,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은 책의 사람들이었다. 로마제국 시대의 종교 중에서 기독교는 유별난 경전 종교였고, 책의 종교였다. 경전 읽기를 유난히 강조했고, 책도 많이 읽었고, 저술도 활발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독교를 ‘체질적으로 텍스트를 중시’하고 ‘텍스트를 마음과 영혼의 중심에 둔 운동’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독교는 어떤 기독교로 인식되고 있을까. 텍스트 중심의 종교일까. 텍스트를 벗어난 종교일까.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많았다. 그 개혁의 시작과 중심에는 책이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은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마르틴 루터다. 루터는 자신의 영적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성경 중 시편과 갈라디아서, 로마서를 미친 듯이 읽고 또 읽었다. 영적 교부들과 인문 고전을 두루 섭렵했다. 성서 언어와 라틴어에도 능통했다. 그랬기에 당대의 기라성 같은 학자들과 논쟁했고,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루터는 책을 읽었고, 읽은 대로 행동했다. 그가 읽은 로마서와 중세 기독교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왜 다르냐’고 물었다가 고초를 겪으면서 개혁의 선도자가 되었다. 그 이후, 그는 한국말로 번역하면 300쪽짜리로 300권이 족히 넘을 정도로 글을 썼다. 독일에서 출판되는 책 중에서 루터의 저서가 많을 때는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 문맹률 95%이던 당시 독일에서 그 정도의 출판은 글을 알든 모르든, 독일인들이 책을 사들였다는 것이다. 쓰는 사람, 사서 읽는 이들이 있었기에 개신교회가 탄생했다. 유럽의 후진국 독일이 사상과 문화의 나라가 되었다. 아, 한국교회와 우리나라도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책은 교회를 만들고 독일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나의 삶도 변화시켰다. 단언컨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살아 있지 않다. 책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30대 중반의 5년 동안 나는 날마다 죽음을 묵상했다. 죽음의 길로 치닫기 직전이었다. 죽지 않기 위해서, 살고 싶어서 성경과 독서에 광적으로 매달렸다. 책을 읽었더니 어느새 작가가 되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었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인데, 내 말을 듣고 싶어 하고, 내 글을 읽고 고맙다고 손잡아준다. 책이 나를 살렸기에 책으로 남을 살리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산다. 이게 어디 나만 누려야 할 복인가.

어제는 성탄절이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기념하는 날이다. 마태와 누가에 의하면, 예수는 아기로 오셨다. 요한은 ‘말씀’으로 오셨다고 말한다. 태초부터 선재하던 말씀이 한 인격체가 되었다. 말과 글이 한 사람, 예수가 되었고 그 한 사람은 말과 글을 온전히 살아냈다. 그리하여 온 세상은 빛을 얻었고, 생명을 누린다. 성탄을 축하한다는 것은 말과 글을 듣고 읽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도 빛의 증언자가 되고, 생명의 전달자가 된다. 말씀인 책, 성경이 우리를 살렸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느라 정신없을 시간에 성경을 읽고, 좋은 책을 읽어 나를 살리고 남도 살려보지 않겠는가.

김기현 (로고스교회 목사)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