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나라는 나라답게, 시민은 시민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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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나라는 나라답게, 시민은 시민답게

입력 2017-12-26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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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잡동사니에 막혀버린 비상구. 이 사진 한 장이 모든 걸 말해준다. 29명이 사망한 제천 화재 참사는 사망자가 그렇게 많이 날 사건이 아니었다. 왜 2층 여자 사우나에서의 사망자가 많은 지 사진은 설명한다. 비상구인데 전혀 비상구가 아니었다. 막힌 비상구, 바로 우리 자화상이다. 드러나는 정황을 보면 법규는 위반하라고 만들어놓은 규정 같다. 불법 증축에 불 잘 붙고 치명적 유독 가스를 내뿜는 드라이비트, 소방로를 막은 불법 주차, 작동하지 않는 스프링클러, 가족이 한 셀프 안전점검….

증축과 드라이비트는 업주 또는 관련자들의 경제적 탐욕과 불법적 봐주기의 결과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불법 주차는 떼민원이 벌어지니 그게 무서워 단속을 포기했거나 양자 간 적당한 타협이 이뤄졌을 수 있다. 스프링클러는 점검 때만 작동케 했거나 어떤 검은 거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전을 원한다면 관련자들이 좀 더 지불하고, 불편을 좀 감수해야 하며,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불편하고 돈이 들면 안전조치는 불필요하다. 내가 안전이 필요하면 모든 게 완벽해야 한다. 이러고도 안전한 나라 운운할 순 없다. 법규를 무시한 대가는 참혹하다.

#2. 조종묵 소방청장이 제천 소방관들과 지난 25일 분향을 한 뒤 “죄송하다”고 사죄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무엇으로도 유족의 슬픔을 대신할 수 없겠지만 그들을 위로하는 건 소방 관리 책임자로서 당연하다. 그러나 위로와 사죄는 구분돼야 한다. 집단적으로 죄 진 듯한 태도의 소방관들을 보는 건 기괴하다. 그들 대부분은 늘 목숨 걸고 화마와 싸우는 영웅들이다. 화인 조사와 진압 과정에서 소방공무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추후 밝혀진다면 절차에 따라 구체적 책임을 지울 이에게 책임을 물은 뒤 사과든 사죄든 하는 게 순서다. 전 정권이 사람을 무시했다고 해서, 그 트라우마가 있다고 해서 모조리 반대로만 행동하는 건 어리석다. 어디선가 그런 분위기를 조성했는지도 모르겠다. 국가가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건 정치적 표현이지 현실에선 가능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뭉뚱그려 ‘잘못했다’는 건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책임소재만 불분명해진다.

#3. 아마 유족의 아픔에 적극 공감한다는 심경을 그리 표현했으리라. 문재인 대통령이 울먹이고, 국민의 욕이라도 들어줘야 한다고 했다는 청와대 대변인의 그 말. 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화재와 관련해 보여준 대통령 언동이 더 진하게 공감됐을 거다. “세월호 정권처럼 정쟁에 이용할 생각은 없다”면서 세월호보다 더 잘못 대응해 화를 키웠다, 정치보복을 하느라 소방 점검을 못했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마치 세월호 사태처럼 흘러가기를 바라는 듯한 증오가 배어 있다. 정치권은 대책 없는 공감 확대와 증오 부풀리기로 참사를 정치로 만들려는가. 합리와 이성은 제쳐두고 원초적 감성에만 호소하면 먹혀드는 수준으로 아는가 보다. 그러니 남는 건 공허함이요, 모든 게 도로 제자리다.

대형 안전사고는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발생할 수 있다. 다르다면 정교한 예방책으로 발생률을 낮추고, 발생 직후에는 합리적으로 대응하며, 중장기적으로는 개선책을 찾아가는 수준일 거다. 법규를 무시하고, 책임소재는 구체적이지 않으며(결국 엉뚱한 희생양 찾기 게임으로 흐른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라고 강요하는 어리석은 정치만 횡행하는 건 전형적인 후진국 행태다.

비슷한 참사가 반복될 정도로 법규를 지킬 생각은 없고, 책임 묻는 데선 어영부영이며, 처리 과정에서는 이분법적 시각만 존재한다. 겉은 화려하게 성장했는데 우리의 생각과 인식은 원시공동사회와 봉건시대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는 건 아닌가. 세월호 이후 달라진 게 뭐냐는 유족의 외침은 가슴을 찌른다. 새해에는 ‘나라는 나라답게, 시민은 시민답게’ 살 수는 없겠는가.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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