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기자의 부교역자 대나무숲] 목사가 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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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기자의 부교역자 대나무숲] 목사가 일하는 이유

입력 2017-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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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몸을 누이고 싶지만 성경책을 집어 든다. 나흘 앞으로 다가온 주일에 전할 설교의 본문을 정하기 위해서다. 밤새 쉼 없이 택배상자를 나르느라 삭신이 쑤시지만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설교를 완성할 수 없다. 수요일 아침마다 김형탁(가명·36) 목사가 겪는 상황이다.

성도 수 100명이 갓 넘는 지방 소도시 교회의 단 한 명뿐인 부목사. 처우가 좋지 않다는 걸 익히 알았지만 사명감으로 자원했다. 김 목사는 비정기적으로 사례비를 받는다. 아내가 피아노학원 강사로 일하며 돈을 벌지만 아들까지 더한 세 식구가 먹고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김 목사는 8개월 전부터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당이 9만∼10만원으로 높은 편이지만 업무 강도가 매우 높아 일주일에 3∼4일을 겨우 일한다.

안진현(가명·38) 목사는 주중에 영업용 택시를 운전한다. 격주로 낮과 밤을 바꿔가며 하루에 8∼10시간씩 주4일 근무한다. 벌써 1년째다. 사납금을 채우고 나면 월 120만∼150만원을 받는다. 그가 ‘택시 모는 목사’라는 건 가족 외에는 몰랐다. 최근 우연히 알게 된 담임목사는 “사례비를 많이 주지 못한 교회의 잘못”이라면서도 “소속 교단(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 목회자 이중직을 금하고 있으니 눈에 잘 안 띄게 야간에 하는 일을 알아보라”고 권했다.

실천신학대학원대 부설 21세기교회연구소와 한국교회탐구센터가 최근 교인 100명 미만 소형 교회 목회자 20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21.4%는 사례비를 받지 않고 있으며, 8.3%는 부정기적으로 받고, 70% 정도 만이 정기적으로 받고 있었다.

응답자의 17.5%는 이중직을 가졌으며 이들 중 41.7%는 사례비를 받지 않고 있었다. 부업으로는 ‘학원 강사와 과외’(22.2%)가 가장 많았고, ‘자영업’(16.7%) ‘복지사업’(16.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중직 보유에 대해 응답자의 56.8%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 25.2%는 ‘적극 수용한다’고 답했다.

보편적으로 부교역자들은 사례비 지급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담임목사의 사례비가 먼저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해 목회 이외의 다른 일을 찾아 나서는 건 당연한 행위다. 김 목사는 “그저 스스로를,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는 것”이라고 했다.

목회와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을 죄처럼 취급하는 시선에 불편함을 느낀다고도 했다. 안 목사는 “목회자로서 받은 소명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기에 이를 지키려 다른 일을 하는 것”이라며 “단 한 명에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해 여전히 ‘불허’ 입장을 고수하는 상당수 교단도 고민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신학교 난립과 예비 목회자 과잉 배출, 성도 수와 헌금의 감소, 교회 재정 악화와 미자립교회 양산 등 악조건들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턱대고 이중직을 허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중직 목회 제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도입되려면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을 예방하고 역량 유지를 위한 감독방안도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 신학교 커리큘럼에 직업교육을 포함시키는 것도 고려해 볼 문제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논의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총회와 노회, 신학교 및 지교회의 협력이 선행돼야 한다. 아무런 대책 없이 ‘쉬쉬’하며 넘어가는 건 불법 목회자만 양산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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