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내년 산재기준 완화... ‘만성과로 산재 인정’ 판도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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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년 산재기준 완화... ‘만성과로 산재 인정’ 판도 바뀌나

입력 2017-12-29 18:01 수정 2017-12-2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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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9시간21분 근무했지만
잦은 외근으로 면역성 떨어져
급성뇌염 걸려 숨진 30대 산재

공단 “주 52시간 넘지 않더라도
업무·질병 관련성 높으면 과로
의학적 인과관계 추론땐 인정”
만성피로 산재 대폭 늘어날 듯


급성뇌염으로 쓰러져 숨진 30대 영업사원에게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 판정을 내렸다. 내년 만성과로 산재 인정기준 개편을 앞두고 이뤄진 조치다.

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아웃도어용품업체 영업사원 A씨(35)는 사무실에서 근무 중 쓰러졌다.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했고 열흘 만에 숨졌다. 사망 원인은 급성뇌염이었다. A씨는 180㎝가 넘는 키에 몸무게 86㎏의 건장한 체격이었고, 평소 술 담배도 멀리했다.

유가족은 A씨가 잦은 외근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급성뇌염에 걸렸다며 산재 보상을 신청했다. 직장 동료들도 “A씨가 쓰러졌던 당일 얼굴이 검게 변해 걱정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피곤해 보였다”고 증언했다.

기존의 산재 판정기준으로는 A씨가 보상받기는 쉽지 않았다. 만성과로가 질병이나 사망의 원인인지 판정할 때는 근무시간을 근거로 삼아왔다. 발병 전 12주 평균 60시간 또는 4주간 64시간 이상 근무한 경우에만 과로를 인정했다. A씨는 쓰러지기 직전까지 주 평균 근무시간이 49시간21분이었다. 발병 직전 12주 평균 근무시간은 44시간57분으로 더 적었다. 과로 인정기준에 못 미쳤다.

그럼에도 공단은 지난달 15일 “A씨 죽음이 업무상 인과관계가 있다”며 산재로 인정했다. 근무시간 자체는 길지 않았지만 아웃도어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 특성 때문에 A씨는 회사에서 먼 도서산간지역까지 출장이나 외근을 해야 했다. A씨가 관리해야 했던 거래처는 전국 곳곳에 있었고 신규 거래처를 뚫기 위해 지방출장을 갈 때면 하루 20곳 이상을 방문했다. 공단은 이런 점을 모두 감안해 A씨를 과로사로 인정했다.

공단의 전향적 판단은 내년 시행을 앞둔 만성과로 판정기준 개편안에 따른 것이다. 개편안은 기존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60시간을 넘으면 당연인정기준으로 삼아 개인질병이 원인이라는 반증이 없으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도록 했고,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더라도 A씨처럼 과로로 볼 수 있는 요인이 있을 경우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높다고 판단하도록 했다.

새 기준이 적용될 경우 만성과로에 의한 산재 적용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공단은 그동안 산재 판정 시 근무시간 기준을 주로 적용해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2013년 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산재를 신청한 4898명 가운데 3596명이 승인받지 못했다. 과로시간 기준을 한 가지 이상 충족한 1351명 중에서도 752명만 산재 인정을 받았다.

공단 관계자는 29일 “앞으로도 업무와 질병 사이 인과관계가 당연인정기준에 명시돼 있지 않거나 미치지 못해도 의학적 인과관계를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면 산재를 인정하겠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글=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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