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김재천] 문재인정부의 국민외교

국민일보

[한반도포커스-김재천] 문재인정부의 국민외교

입력 2017-12-3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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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외교와 공공외교를 통한 국익 증진’.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96번 과제명이다. 외교정책 입안과 집행 과정에서 일반 국민의 영향력이 제고됐고, 따라서 국민과 소통하고 여론을 수렴해 외교정책을 추진해야 국익을 증진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국정과제라고 판단된다. 일국의 외교행위는 통상 정부의 행위자가 상대 국가의 정부를 대상으로 수행한다.

그런데 상대국 국민과 소통하고 이들의 마음을 사는 공공외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추세다. 관계와 학계에 익히 알려진 공공외교에 비해 국민외교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공공외교가 타국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외교라면 국민외교는 자국의 국민을 대상으로 주요 외교정책에 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민 참여를 확대하는 외교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개념일 것이다. 이전 정부의 일방적인 외교정책 결정이 초래한 부작용을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근혜정부의 주요 외교정책 결정은 여론수렴 과정 없이 내려졌다. 이명박정부가 국무회의 비공개 안건으로 처리하려다 반대 여론에 직면해 포기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여 처리했다. 사드 배치 결정 역시 미국의 요청도 없었고, 한·미 간 협의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는 3노(No) 정책으로 일관하다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급작스레 내려졌다.

역사 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 정상회담도 없다더니 협상 두 달 만에 전격 타결한 위안부 합의는 많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탄핵됐지 국민외교를 못해 탄핵된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국민들은 박근혜정부의 외교정책 결정의 방법론에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당위성에는 동의했다.

“오늘날의 외교는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는 문재인정부는 국민외교를 잘하고 있는 것일까. ‘작은 나라’ 한국이 ‘운명공동체’로 중국의 ‘통 큰 꿈’과 함께하겠다고 한 문재인정부의 방중 외교는 많은 국민의 공감을 사지 못했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어찌 국가의 크고 작음을 인구와 영토, 그리고 강성 권력으로만 판단할 수 있으랴. 촛불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국민들의 마음에는 인권이 존중되고 언론자유가 보장되는 민주국가 대한민국이 최소한의 자위적 조치인 사드 배치 결정에 뒤에서 자잘한 보복이나 일삼는 중국보다는 훨씬 더 큰 국가다.

어느 국민이 이런 국가와 운명공동체로 같은 꿈을 꾸라고 했나. 국민과 함께하는 외교는 온데간데없고, 일방적인 설명과 뜬금없이 실용외교 운운하며 스스로 120점을 주는 자화자찬밖에 없었다. 임종석 비서실장의 UAE 특사 방문은 비밀 외교의 완결판이다. 방문 목적을 궁금해하는 여론에 외교 당국자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청와대는 수차례 말을 바꿨다. 더 나아가 집권당 대표는 “파트너가 있는 상대국과 대화를 공개하고 구체적으로 (내용을) 언급하라고 요구하는 세력은 국익에 대해 눈곱만큼도 보호 의식이 없는 집단”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국민과 함께하는 외교라는 미명 하에 한·일 간 비공개 협의 내용까지 들춰낸 정부의 여당 대표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평창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미국 NBC 기자에게 평창올림픽 기간 중 한·미 군사훈련 연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국민외교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중대 정책 결정을 정작 국민들은 외신을 통해 처음 접해야 했다. ‘코리아 언론 패싱’이라는 기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개성공단 중단 결정에 결여됐다는 절차적 정당성은 확보하고 내린 결정일까. 70%에 육박하는 지지율이 국민 합의 도출 과정을 우회할 수 있는 프리패스는 아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재외공관장 만찬에서 “우리 국민이 우리 외교의 힘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했다”고 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만남에서는 역지사지를 강조했다. 대통령이 언급한 우리 국민이 반쪽짜리 국민이 아니기를 바란다. 나머지 반쪽 국민들과도 역지사지하기를 기대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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