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톡!] 복수의 길… 용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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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톡!] 복수의 길… 용서의 길

영화 ‘1987’로 본 같은 경험 다른 인생

입력 2018-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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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된 영화 ‘1987’ 포스터를 배경으로 그래픽 처리된 박처원 치안감(김윤석 분·왼쪽)과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두 사람은 6·25전쟁 때 북한군에 가족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각각 복수와 용서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영화 ‘1987’은 1987년 1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과 같은 해 6월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군의 죽음, 그리고 독재를 종식시키려는 국민의 열망을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피로 얻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겨주고 젊은이들에겐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는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 우리 기억에서 멀어져 있던 공간을 이어주는 가교와도 같습니다.

‘1987’엔 치안본부 대공수사처가 등장합니다. 이들의 중심엔 투박한 북한 사투리를 쓰는 박처원 치안감이 있습니다. 실존인물인 박 치안감은 한 사람을 취조하던 중 이런 말을 꺼냅니다. “지옥이 뭔지 아네? 눈앞에서 가족이 죽창에 찔려 죽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지켜봐야 하는 것, 그거이 바로 지옥이야.” 없던 ‘빨갱이’까지 만들어내던 그에게 공산주의자는 복수의 대상이자 출세의 통로일 뿐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떠올랐습니다. 그 또한 1950년 아버지 서용문 목사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총살당하는 걸 목격합니다. 복수심에 북한이라면 치를 떨었죠. 하지만 미국 유학 중 극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뉴욕 유니언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마틴 루서 킹의 비폭력평화운동을 보며 복수의 칼을 떨굽니다.

2일 전화 인터뷰에서 서 교수는 “원수를 갚는 건 결국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위대한 진리를 깨달았다”고 회상했습니다. 깨달음은 삶의 변화로 이어졌죠. 귀국해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생 동안 평화통일을 위해 활동합니다. 남북한의 평화만이 공존의 길이고 한반도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을 갖고 지금도 평화의 사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피해자로서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십자가입니다. 다만 그 십자가를 지는 사람에게 부활의 영광이 있다고 믿습니다.”

같은 경험을 한 두 사람이지만 삶의 궤적은 ‘보복’과 ‘용서’로 달랐습니다. 2018년 새해 벽두, 우리는 여전히 전 정권이 뿌려 놓은 적폐들을 청산하고 있습니다. 혹시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 아래 어느 한 구석에 보복이 잠재해 있는 건 아니길 바랍니다. 바로 이 시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를 통한 승리’ 아닐까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위대한 진리였다’고 고백한 노교수의 일갈을 떠올려 봅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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