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으로 보살피면 충의로 보답한다

국민일보

정으로 보살피면 충의로 보답한다

황금 개띠 해에 찾은 ‘오수의견’의 고장 전북 임실

입력 2018-01-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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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군 운암면 학암리에서 본 옥정호 태극 물돌이. 물뱀이 유영하듯 산자락 구비를 에둘러 돌아가는 풍경이 압권이다. 붕어섬과 함께 옥정호의 대표적인 볼거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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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군 오수면 원동산에 조성된 의견상과 의견비. 왼쪽 고사한 느티나무가 오수견의 환생목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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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면 영천리에 복원된 김개인 생가(위 사진), 관촌면 사선대 위에 올라앉은 운서정(아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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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면 도인리에 조성돼 있는 치즈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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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황금 개띠의 해’가 밝았다. 개는 지구상의 어떤 동물보다 인간과 가까운 존재다.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해 사람을 잘 따르며 후각과 청각이 예민하고 주인에게는 충성심이 강하지만 낯선 사람에게는 경계심이 많다고 전해져 왔다. 자신의 영역에 대한 경계 본능은 대단한 용맹성을 보여 준다. 수호 동물로서 개의 모습을 더욱 믿음직스럽게 여기게 한다. 충성심이 강한 개의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 전북 임실이다.

1000년 전 신라시대 거령현(居寧縣·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사는 김개인(金蓋仁)이란 촌로는 큰 개 한 마리를 길렀다. 심성이 착한 그는 개를 애지중지 아꼈다. 어디를 다닐 때면 항상 데리고 다녔다. 먹을 때도 같이 먹고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면서 생활했다. 개는 충심을 다해 늘 그의 곁을 지켰다.

어느 날 주인은 이웃 둔남(屯南)마을(현 오수면)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집으로 향했다. 술기운이 올라온 그는 집에 도착하기도 전 몸을 가누지 못하며 풀밭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개는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기만 기다리며 쪼그리고 앉아 지키고 있었다.

그때 부근에서 들불이 일어나 번지고 있었다. 개는 주인을 입으로 물고 밀면서 깨우려고 온갖 지혜를 다 짜냈다. 그러나 술에 취해 잠이든 주인은 주위의 불길도 아랑곳없이 깨어날 줄 몰랐다. 뜨거운 불길이 점점 주인의 옆에까지 번져오자 개는 가까운 냇물로 달려가 온몸에 물을 흠뻑 묻혀와 잔디를 적시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번을 이렇게 왔다갔다해 불길을 잡았다. 그러나 힘이 쑥 빠진 개는 주인의 옆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잠에서 깨 주위를 둘러본 뒤 경위를 알게 된 주인은 몸을 바쳐 자기를 구해준 개를 부여안고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주인은 개를 장사지낸 뒤 이곳을 잊지 않기 위해 개의 무덤 앞에 평소 자기가 지니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두고 자리를 떴다. 얼마 후 지팡이에 싹이 돋기 시작해 하늘을 찌를 듯한 느티나무가 됐다. 고려 고종 때(1254년) 문인 최자(崔滋)가 쓴 보한집(補閑集)에 담긴 오수개 설화다. 1973년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잘 알려진 얘기다.

임실에서 남원으로 가는 춘향로로 10㎞쯤 가면 오수면이 나온다. 오수는 큰 개와 나무를 뜻하는 오(獒)와 수(樹)를 합친 말이다. 둔남이란 옛 지명을 버리고 1992년 오수로 개명했다.

오수 시장 옆 원동산(園東山) 공원에는 의견(義犬)비와 동상이 서 있다. 돌로 된 비는 오랜 세월을 겪으며 심하게 마모돼 있다. 탁본을 떠본 결과 앞쪽은 개 모양, 뒤쪽은 비석을 세우는데 비용을 보탠 옛사람들의 이름이 대거 발견됐다. 오수견 동상은 티베탄 마스티프류 형상이다. 덩치가 커 사자개로도 불리는 티베트산 개다. 개량종이 오수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약 120∼150㎝ 안팎의 키에 쩍 벌어진 어깨를 갖춘 대형 종이었을 것이란 추정이다. 그 주변에는 고사한 느티나무가 있다. 오수견의 환생목으로 여겨져 임실군 지정 보호수로 보호받았지만 2011년 낙뢰로 수명을 다하면서 해제됐다.

멀지 않은 곳에 의견공원이 있다. 임실군 실내체육관인 문화체육센터와 잔디밭, 팔각정, 연못을 갖췄다. 연못 주변으로 ‘오수의견’을 비롯, 1800년대 알프스에서 추위와 눈보라를 뚫고 12년 간 약 40여 명의 귀중한 생명을 구해낸 스위스 ‘베리’ 등 각 나라의 의견 동상이 서 있다. 사연을 소개한 안내판도 설치됐다. 원동산에서 북동쪽으로 약 6㎞ 떨어진 지사면 영천리에 김개인 생가가 복원돼 있다. 본채와 부속채, 화장실이 들어서 있다. 생가 앞에 김개인과 의견의 동상이 서 있다.

옥정호는 전북 정읍과 임실 지역을 흐르는 섬진강 상류의 물줄기를 막아 1965년 댐을 만들면서 생긴 인공호수다. 운암호, 섬진호 등으로도 불리는데, 물만 가두고 있는 여느 저수지와는 풍경의 깊이가 다르다. 면적은 26㎢ 남짓. 물줄기가 넓게 퍼져 있지 않고, 물뱀이 유영하듯 산자락 구비를 에둘러 돌아간다.

옥정호 최고의 전망대는 국사봉이다. 운암대교에서 5㎞ 남짓 구불구불 호반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운암면 입안리에서 국사봉 전망대 주차장을 만난다. 등산로를 따라 20분 남짓 올라가면 믿을 수 없이 빼어난 옥정호의 모습이 한눈에 잡힌다. 호수 가운데 떠 있는 섬은 ‘외앗날’이다. 흔히 붕어섬으로 불린다.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섬을 둘러싼 호수의 물길과 주변 산자락들이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옥정호에서 붕어섬 외에 또 봐야 할 곳이 있다. 태극 물돌이다. 임실군 운암면 학암리 646-4번지를 찾아간 뒤 오른쪽 도로를 따라 고개까지 오른다. 이곳에서 옥정호 마실길을 따라 산으로 20여분 오르면 된다. 묘지를 지나면 곧바로 바위가 나온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환상적인 물돌이가 펼쳐진다. 붕어섬은 어느 정도 물이 차야 붕어의 형태가 완벽하고 태극 물돌이는 물이 어느 정도 빠져야 태극 형태의 섬이 된다. 지금은 물이 너무 많이 빠져 있다.

옥정호는 드라이브하기에도 좋다. 13㎞의 옥정호 순환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가운데 우수상에 뽑힐 정도로 환상의 코스로 꼽힌다. 호수를 끼고 굽이치는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맛이 일품이다.

임실의 북부는 관촌면이다. 진안의 마이산에서 출발한 섬진강이 관촌면소재지를 크게 에돌아 나간다. 그 굽이진 곳에 병풍과 같은 벼랑이 펼쳐져 있다. 사선대(四仙臺)다.

2000년 전 진안 마이산의 두 신선과 임실 운수산의 두 신선이 관촌의 강변이 선경이란 소문을 듣고 찾아든다. 네 신선은 풍경에 취해 산을 오르고 강가를 거닐며 목욕을 즐긴다. 그때 네 명의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신선들을 얼싸안고 사라진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다.

사선대는 1985년 국민 관광지가 됐다.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식당촌이 있고 그 앞으로 넓디넓은 잔디광장이 펼쳐져 있다. 광장의 가장자리에는 강변을 따라 나무 그늘진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조각공원이 열린다.

사선대를 올려다보면 산 능선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지붕 하나가 보인다. 운서정(雲棲亭)이다. 1928년 김승희라는 부호가 자신의 아버지 김양근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쌀 300석을 들여 6년에 걸쳐 지었다고 한다.

가파르고 울창한 산길을 오르면 경사지에 높이 쌓아올린 우람하고 옹골찬 석축과 높이 솟구친 정문이 나타난다. 정문을 지나 다시 계단을 오르면 양쪽에 동재와 서재가 자리한다. 그 정면으로 다시 한 번 더 단을 돋워 운서정을 앉혔다. 정자에 오르면 새 둥지 같은 관촌이 발아래 펼쳐진다. 운서정에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오래된 산성에 이른다. 백제 무왕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성미산성으로 6∼7세기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였다. 대부분 붕괴되고 일부만 남아 있다.

■여행메모
치즈·다슬기탕·메기매운탕… 먹거리 다양, 필봉문화원 취락원에서 즐기는 한옥 정취

수도권에서 출발하면 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익산포항고속도로∼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타고 오수나들목에서 빠진다. 사선대는 상관나들목을, 치즈테마파크는 임실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좋다. 서울에서 약 3시간30분 소요된다. 옥정호는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을 나와 17번 국도를 타는 게 빠르다.

임실은 치즈를 활용한 먹거리가 많다. 스트링 치즈, 고다치즈, 산베르크 치즈, 콜비치즈 등 다양한 치즈들을 사서 먹어볼 수 있다. 치즈 아이스크림, 치즈돈가스 등 음식도 이색적이다. 다슬기탕(다슬기수제비)을 내는 식당도 많다. 강진면사무소 앞 성원회관과 버스터미널 앞의 성심회관 등에 손님이 많다. 사선대관광지 안 초원장은 메기매운탕 등을 잘한다. 오수면 우족탕 전문점 '장안집'은 소머리국밥(사진)이 별미다.

가족과 함께 임실을 찾았다면 한옥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필봉문화원의 명소 취락원이 운영하는 한옥스테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인원에 따라 2∼16인실에 숙박할 수 있다.

임실=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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