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영석] 과학을 말하지 않는 사회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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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김영석] 과학을 말하지 않는 사회Ⅱ

입력 2018-01-0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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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대생이었다. ‘공돌이’ ‘단무지’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단순하고 무식하며 과격한 공대생이라는 의미다.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은 사회 인식이다. 이공계 탈출 현상과 무관치 않다. 과거 TV에는 ‘한지붕 세가족’의 순돌이 아빠나 한국판 맥가이버가 자주 등장했다. 호기심이 발동해 기계를 분해해 보던 때가 있었다. 요즘 전자제품을 직접 고치는 이는 없다. 수리는 해당 제품 회사 관계자의 몫이다. 과학 호기심을 리모컨이 대체하는 시대다. 진한 거부감마저 느껴진다. 과학 소외 현상이다.

과학 소외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대한민국 최고 규범인 헌법부터 들여다보자. 헌법 9장 127조 1항에 과학이 등장한다.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조항의 전신은 1962년 만들어졌다. 제5차 개정헌법 제118조 1항에는 ‘국민경제의 발전과 이를 위한 과학진흥’이라는 표현이 담겼다. 과학을 경제발전과 처음 연결시켰다. 72년 7차 개정 때는 ‘국민경제의 발전과 이를 위한 과학기술’이라는 문구가 삽입됐다. 현행 헌법까지 과학엔 경제가 커플로 따라왔다. 세계에서 경제 종속 개념으로 과학을 규정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교육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헌법에 명시한 상당수 국가들과 대비된다. 세계 최빈국에 속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할 때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먹고살기에 바빠 자연의 신비를 밝힐 여유가 우리에겐 없었던 것이다.

헌법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위법마저 헌법의 틀에 갇혀 버렸다. 1967년 만들어진 과학기술진흥법은 여전히 5차 개정헌법의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07년 시행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기타공공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카지노 사업자인 강원랜드와 똑같은 관리와 규제를 받고 있다. 과감한 연구 대신 위험성이 작고 성과를 내기 쉬운 주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개정 필요성이 계속 제기됐지만 ‘세금이 투입된 기관은 그에 따른 관리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경제 관료들의 논리를 넘지 못하고 있다.

연구 개발보다 정책을 앞세우는 위정자들도 문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녹색 성장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창조 경제를 내세웠다. 결과는 실패였다. 주문식 연구의 한계다. 문재인정부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과학기술을 혁신성장의 동력이라고 말했다. 또다시 정책 입안자들의 밥그릇 키우기용으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과학기술의 흐름이 바뀌는 건 상식이 아니다.

과학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응용과학은 과학 원리를 바탕으로 신기술을 개발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므로 경제발전과 관련이 있다. 기초과학은 곧바로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법칙 발견을 통해 사회발전을 위한 다양한 가치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과학을 경제 문제에만 가둬둘 수 없는 이유다. 경제 논리만으로 과학을 논하는 것은 하나의 잣대로 무게 부피 질량 길이 모두를 측정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과학을 경제에서 해방시킬 때가 됐다. 과학기술계 일각에선 개헌이 필요하다고 한다. 헌법 127조 1항을 삭제하고 전문에 ‘국가는 학술 활동과 기초 연구를 장려할 의무가 있다’는 표현을 넣자는 작은 움직임이다. 권력 구조 개편 논의 중심의 개헌 정국에서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는 귀 기울여야 한다. 과학기술을 경제의 도구로 계속 방치한다면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이라고 쓰고 경제 도구로 읽는 현행 헌법 구조만이라도 바꾸어야 한다. 과학을 있는 그대로의 과학으로 말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과학기술의 비상이 아니라 추락을 막기 위한 날개가 필요한 시점이다.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갖고 전자제품을 뜯어보는 이들을 TV에서 자주 보고 싶다.

김영석 논설위원 y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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