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청년] “흔들리는 인간 高宗으로 10년 살며 하나님 닮아가야 할 이유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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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청년] “흔들리는 인간 高宗으로 10년 살며 하나님 닮아가야 할 이유 깨달았죠”

뮤지컬 명성황후 고종역 팝페라 가수 박완

입력 2018-01-0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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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페라 가수 박완이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의 한 공연장 대기실에서 크리스천 예술인으로서 살아온 지난날을 소개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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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이 2015년 9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뮤지컬 ‘명성황후’ 20주년 기념공연에서 고종 역으로 열연을 펼치는 모습. ㈜에이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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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고종(高宗)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건 그가 보여준 주체할 수 없는 흔들림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 그게 곧 하나님을 끝없이 닮아가야 할 이유라는 것입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의 한 공연장에서 만난 팝페라 가수 박완(36)은 뮤지컬 ‘명성황후’와 함께해 온 지난 10년을 이렇게 회고했다. 붉은 용포에 익선관(임금이 정무를 볼 때 쓰는 관)을 쓴 무대 위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에게선 한 배역과 오랜 세월 함께하며 발견한 깨달음이 엿보였다.

이 뮤지컬은 우리나라 창작뮤지컬을 대표하는 수작으로 꼽힌다. 100만 관객 시대의 포문을 연 작품이다. 1995년 초연 후 23년간 1300회 공연, 누적 관객 180만명, 국내 창작뮤지컬 최초 미국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공연 등의 역사를 써내려 왔다. 박완은 1300회의 무대 중 500여회를 책임졌다. 윤석화 이태원 이상은 김소현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명성황후 역을 거치는 동안 그는 가장 오랜 기간 고종의 옷을 입었다.

“전 계속 그 자리에 있는데 부인들이 계속 바뀌더라고요(웃음). 고종 역을 맡은 최장수 배우. 그 타이틀에 대한 무게만큼 자부심도 큽니다.”

배우로서 작품 ‘명성황후’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새로 뿌리박힌 건 고종 역을 맡은 지 1년쯤 후였다. 박완은 “2009년 10월 8일 일본 구마모토현 가쿠엔대에서 특별공연을 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날은 114년 전 명성황후가 시해되던 날이었고, 구마모토현은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48명 중 21명의 고향이었다. 시해자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올려진 무대는 700여명의 일본 관객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진풍경을 남겼다.

“일본 정부로부터 ‘공연 지역을 바꾸라’는 압박이 오고 양국 언론들도 공연 전부터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였습니다. 걱정됐지만 제작자인 윤호진(에이콤) 대표의 한마디가 중심이 돼 줬습니다. ‘명성황후’를 이곳에서 공연하지 못한다면 민족의 아픈 역사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이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꼭 전해야 할 이들 앞에 펼쳐 보이는 게 마땅한 일이라고 했죠.”

그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길을 돌아왔다. 5살 때 피아노 앞에 처음 앉은 소년 박완은 1년여 만에 콩쿠르 시상대에 올라 주위를 놀라게 했고, 중학생 시절엔 국가대표 농구선수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농구를 시작해 명문 휘문고에 진학하기도 했다. 농구선수치곤 작은 신장(182㎝) 때문에 한계에 부딪힌 그는 고민 끝에 성악가로의 길을 냈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선물해 준 스리 테너(The three tenors·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공연실황 음반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어요. 농구를 포기한 뒤 음악시간에 ‘로렐라이(Lorelei)’를 독창했는데 선생님께서 ‘보통 목소리가 아니니 성악을 해보라’고 권유하시더군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를 때 교회 성가대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던 선배들이 나침반이 돼 주셨어요. 베이스 실기 준비 1년 만에 덜컥 성악과에 합격했죠.”

대학 시절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라보엠’의 주연으로 무대를 누비던 박완은 관객과 더 쉽게 소통하기 위해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성악 발성으로 대중적인 팝음악을 소화하는 팝페라 가수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것. 2005년엔 무려 1100여명의 경쟁자 틈에서 뮤지컬 ‘겨울연가’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영역을 넓혔다. 그는 “하나님이 예비해두신 길이라고밖엔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회상했다.

‘명성황후’ 외에도 ‘사운드 오브 뮤직’ ‘레베카’ ‘쌍화별곡’ 등을 통해 그가 맡아온 배역은 10여개. 그중 ‘사운드 오브 뮤직’의 게오르크 폰 트랍 대령으로 살았던 날들이 그에겐 잊히지 않는 순간이다. 함께 열연한 배우 양희경, 가수 소향 박기영 등과 신앙으로 똘똘 뭉친 2년여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고된 연습으로 피곤할 때 삶과 신앙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서로를 토닥이고, 무대에 오르기 전 서로 손잡고 기도하던 날들이었다”고 회상했다.

평소 수면시간이 하루 5시간을 넘지 않을 정도로 빼곡한 일정을 소화하는 그에겐 열정만큼 분주한 2018년이 기다리고 있다. 다음 달엔 크로스오버 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회의 예술감독으로 나서고 오는 3월엔 뮤지컬 ‘명성황후’의 막을 연다. 3년 연속 단독 콘서트로 관객을 만났던 팝페라 가수로의 무대도 많은 이들을 설레게 한다.

“노래도 연기도 관객을 위로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그게 하나님이 제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글=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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