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자리에 서니 ‘마을’이 보이기 시작… 전도는 저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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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자리에 서니 ‘마을’이 보이기 시작… 전도는 저절로”

‘목사보다 주민’… 충남 보령 시온교회 김영진 목사

입력 2018-01-0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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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시온교회 목사가 지난 4일 오전 낙동초등학교 학생들을 등교시킨 뒤 승합차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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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시온교회가 매년 진행하는 영농교육 강의를 듣고 있다. 시온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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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초등학교 바이올린 동아리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는 모습. 시온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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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교육에 참여한 한 할머니가 직접 볶은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시온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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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시 시온교회(김영진 목사)는 서해안고속도로 광천 톨게이트에서 자동차로 2분 거리에 있는 작은 교회다. ‘교통의 요충지’라 번잡할 것 같지만 보령시 천북면 일대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농촌마을이다. 산과 들이 펼쳐져 있고 지척에 천수만이 있는 마을에서 주민 대부분은 배추농사를 짓거나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시온교회는 천북면의 구심점이다. 교회가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일 교회에서 만난 김영진 목사는 “1993년 부임했을 때부터 주민으로 살겠다고 선언했다”고 했다. “목사로서 이것저것 가르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소박하게 살면서 먼저 마을을 배우고 주민들의 고충에 귀 기울이는 목사가 되기로 했죠. 주민의 자리에 서니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목사가 주민으로 살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교회는 마을의 일원이 됐다. 교회가 마을에 동화되니 주민들이 교회에 등록하기 시작했다. 시무장로 3명 중 2명이 김 목사 부임 후 교인이 됐다. 시온교회에 부임한 지 5년 만에 마을노인회가 감사패를 주기도 했다. 김 목사는 “주민이 됐다고 마을 어른들이 인정해 준 상으로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시온교회가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건 2007년이었다. 당시 보령시 교육청이 낙동초등학교 통폐합 계획을 발표했다. 2011년이면 마을에서 유일한 초등학교가 사라지게 된다는 발표에 주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김영진 주민’이 낙동초등학교를 살리겠다며 총대를 멨다. “안 그래도 조용한 마을에 아이들마저 없어진다면 마을의 미래까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낙동초등학교를 살리기로 하고 뭐든 하기로 했습니다.”

교회는 교회에서 진행하던 공부방 프로그램을 학교로 옮겼다. 통폐합을 준비하던 학교에 난데없이 피아노 레슨과 영어·한문 공부방이 생겨났다. 학교가 활력을 되찾았다. 교회가 학교를 살리겠다고 나서자 동문과 주민들도 마음을 모았다. 당시 김 목사는 학생들의 등하교 거리가 멀다는 걸 알고 ‘스쿨버스 기사’를 자처했다. 승합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매일 실어 나르는 일을 지금도 하고 있다. 김 목사를 만나기로 한 날 아침에도 3명의 초등학생이 교회 승합차를 타고 학교에서 진행되는 방학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낙동초등학교가 생기를 찾아갈 무렵이던 2009년, 학교는 천군만마를 얻었다. 한 공영방송이 시골학교를 살리자는 취지로 마련한 프로그램의 촬영지로 낙동초등학교가 선정됐다.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세계적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마을을 찾았다. 없어질 위기에 있던 시골학교에 합창단이 만들어졌고 재학생 전원이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낙동초등학교 동창회도 학생들에게 바이올린을 선물했다.

결국 낙동초등학교는 마을의 ‘행복 발전소’가 되고 있다. 합창단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고 오케스트라까지 만들어졌다. “없어질 학교가 이젠 명문 초등학교가 됐습니다. 낙동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고 오케스트라 활동도 하죠. 이런 학교가 우리나라에서 흔한가요.” 이 일로 시온교회는 주민들의 전적인 신뢰를 받게 됐다.

신뢰는 협력으로 이어졌다. 배추농사를 지어도 판로가 마땅치 않던 주민들을 위해 김 목사는 도시 교회를 통해 판로를 개척했다. 그래서 시작된 일이 ‘절인 배추’와 ‘김장 김치’ 판매다. 교인들이 만든 절인 배추와 김장 김치는 인기리에 도시로 팔려 나가고 있다.

교회 옆에 있는 신죽리 수목원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교회 이원갑 장로가 가꾼 개인수목원을 교회와 협력해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한 게 20여년 전 일이다. 교회는 주민들을 수목원에 초청해 ‘들꽃축제’라는 이름의 마을잔치를 열어왔다. 소박했던 축제는 ‘온새미로 축제’로 확대돼 매년 11월 전국에서 관광객이 찾는 성공적인 지역축제로 자리 잡았다.

최근 들어 김 목사는 ‘마을여행 가이드’를 자처하고 나섰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김 목사가 기획한 이 여행은 도시 사람들에게 농촌의 구석구석을 보여주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여행지는 소박하지만 알차다. 신죽리 수목원과 낙동초등학교, 커피 로스팅 공장,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는 개화목장과 천수만 등을 방문하는 일정은 도시교회 교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김 목사를 만났던 날 오후에도 인천의 한 감리교회에서 65명의 교인이 마을여행을 위해 내려왔다. 김 목사는 “교회가 큰일을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마을과 함께 호흡하면서 주민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필요에 따라 대안을 마련하다 보니 이런 일들을 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목사는 “교회가 마을에서 고립되어선 곤란하다”면서 “교회의 규모를 떠나 마을에 잘 동화되고 화합한다면 결국 사역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된다”며 마을과 교회의 소통을 당부했다.

▒ 깨 볶던 실력으로 커피 로스팅… ‘바리스타 선교’

“할머니들이 커피를 얼마나 잘 볶는지 모릅니다. 할머니들은 ‘깨 볶던 실력이면 커피 로스팅도 문제없다’고 하세요. 시골마을에서 바리스타 교육이 이렇게나 사랑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김영진 목사는 충남 보령시에 바리스타 열풍이 불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커피 바람을 몰고 온 이는 안대정 목사. 그는 ‘보령커피’를 만들고 커피 전도사로 나섰다. 김 목사는 ‘보령커피’의 고문이다. 로스팅 공장까지 만들고 커피를 통한 전도에 나선 목회자들은 이 지역에만 여럿이다. 마을을 돌며 바리스타 교육도 진행하는데 특히 60, 70대 어르신들의 호응이 크다.

커피가 선교에 도움이 된다는 게 김 목사의 지론이다. “목사들이 커피사업을 시작한 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자는 취지였죠. 바리스타 교육을 하거나 또 주민들에게 커피를 만들어 드리면서 항상 대화를 합니다. 대화의 종착점은 복음이죠. 커피가 불신자와 목사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올해부터 클라리넷과 바이올린 등 악기도 배우고 있다. 올여름 낙동초등학교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게 목표다. 김 목사는 “농촌형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졌는데 ‘들꽃 오케스트라’라고 이름 붙일 예정”이라고 했다.

1993년부터 마을목회에 앞장서고 있는 김 목사는 지난달 29일 충청남도가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충남인상’도 받았다. “제가 사실 목포 사람이에요. 그런 제가 자랑스러운 충남인상을 받았다는 건 마을을 더 잘 섬기라는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주민들과 함께하는 목회가 행복하네요….”

보령=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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