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전정희] 최저임금, 본원적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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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전정희] 최저임금, 본원적 힘

입력 2018-01-0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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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 영의정 이원익은 광해군에게 공평과세 대동법 시행을 건의했다. 토지 소유와 관계없이 가구마다 일률적으로 부과되던 세금을 차등 부과하자고 주장했다. 즉 가난한 농민에게는 세금을 걷지 않고 지주에게만 쌀로 세금을 거두자는 혁신적인 정책 제시였다.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민생을 되잡고자 하는 뜻도 있었다.

이원익은 앞서 4도 제찰사 때도 대동법 실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선조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백성의 삶이 행복해야 조정이 고락을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들 마음에 노동의 의지가 없다면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선조는 전쟁 직후라 경황이 없었고, 광해군은 사대부의 조세저항이 우려돼 항구화하려 하지 않았다. 광해군이 경기도를 시범 실시한 이유다. 인조는 삼도대동법으로 확대했다. 이때도 반대 세력의 저항이 드셌다.

우의정 신흠은 삼도대동법 시행에 따른 공평과세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백성은 편하게 여기는 데 호족들은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대가(大家)와 거족(巨族)이 원망하는 법이라면 쇠퇴한 세상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 대동법은 100년이 지나서야 전국적으로 실시된다.

최저임금제 실시를 놓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의 부담이 큰 까닭이다. 임금인상폭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동법도 사목(事目·운영규정)을 다듬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정책적 신념과 철학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분명한 점은 최저임금제를 수요와 공급의 질서에 따른 시장경제체제 수호 문제로 몰아가선 안 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이루지 못하는 ‘시장의 실패’를 염두에 둬야 한다. 최저임금제 취지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 보장이다.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시장경제가 불완전해진다.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또 시장경제에서 노동은 임금이라는 가치로 표현된다. 가치라는 어원에는 ‘본원적인 힘’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따라서 최저임금은 ‘인간다운 삶의 본원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생이건, 파트타임 식당 종사자건 최저임금을 받아 본원적 힘을 축적하기 위해 소비한다. 생산과 노동과 소비는 한 축이다. 그들을 소비의 주체로 인정하고 어렵더라도 사목을 조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글=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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