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수요와 공급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수요와 공급

입력 2018-01-09 18:13
  • 국민일보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기사사진

지난달 난데없이 달걀 여러 판이 집에 배달됐다. 서울대 평창캠퍼스 실험목장에서 보낸 것이었다. ‘살충제 달걀’ 파동이 전국을 휩쓴 작년 여름 이 유기농 목장의 전화통은 불이 났다. 살충제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일찌감치 인증돼 주문이 빗발쳤다. 일반 달걀보다 훨씬 비싼데도, 배송이 밀려 있다는 안내에도 사람들은 이곳 달걀을 원했다. 아내가 그 대열의 막차에 탔던 모양이다. 여름에 주문한 달걀이 겨울에 도착했다.

살충제 사태는 달걀의 수요와 공급에 극심한 불균형을 초래했다. ‘안전한 달걀’ 수요는 폭증한 반면 서울대 목장의 비싼 달걀을 없어서 못 팔 만큼 공급은 부족해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렵게 주문한 달걀이 도착했는데 주문했던 사실조차 잊었을 정도로 수급은 진즉 균형을 찾았다. 정부는 외국에서 급히 달걀을 수입하고 전수 검사를 거쳐 국내 농가의 출하를 재개했다. 한두 달 만에 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있었다.

이 달걀처럼 모든 상품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지면 가격이 상승하고 공급이 더 많으면 내려간다. 시장에서 가격을 조절하는 기본적인 수단은 공급을 움직이는 것이다. 배추 작황이 나빠 값이 치솟으면 정부는 배추를 수입해 가격을 안정시킨다. 공산품은 업자들이 알아서 생산량을 늘리니 굳이 정부가 나설 필요도 없다. 수요-공급 법칙이 적용되는 상품이면서 수급 조절이 가장 까다로운 건 집이다.

부동산은 생산과 소비가 같은 지역에서 이뤄진다. 부산의 주택 수요가 늘어나면 부산에 집을 지어야 한다. 서울의 집을 가져다 공급할 수도, 외국에서 수입할 수도 없다. 수요와 공급 사이에 긴 시차가 있다. 주택 수요 증가는 지금의 일인데 아파트를 지으려면 3년은 걸린다. 아무리 열심히 지어도 달걀처럼 한두 달에 수요를 맞추지 못한다. 다 지을 때쯤 시장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모르고 미래 수요를 예측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이런 속성 탓에 집은 공급 조절로 값을 다루기가 아주 힘들어서 역대 정부마다 다른 수단을 꺼내들곤 했다. 주로 세금과 대출이었다. 노무현정부는 세금과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는 이를 크게 완화했고 문재인정부는 다시 죄고 있다. 돌아보면 집값은 매번 정부 의도와 다르게 움직였다. 집값을 잡으려 세금과 규제를 강화할 때의 상승률이 집값을 띄우려 완화할 때보다 훨씬 높았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분기점을 앞두고 있다. 4월부터 대폭 강화된 양도소득세가 시행된다. 대출과 재건축 규제에 세금정책까지 완성된 형태를 갖출 것이다. 4월 이후엔 집값이 꺾일 것인가.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2008년 이후 가장 큰 폭이었다. 지금 서울에 집을 사려는 사람들, 부동산 좀 해봤다는 사람들은 4월 이후 서울 집값이 오히려 가파르게 상승할 거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런 믿음의 근거로 수요와 공급을 들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주택 공급은 크게 두 가지다. ①집을 새로 짓거나 ②기존 주택이 매물로 나오거나. ①은 앞서 말한 부동산의 속성에 제한을 받는다. 서울 같은 도시는 집을 새로 지을 땅이 없고 재개발을 통해 짓는다 해도 몇 년 뒤에나 공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수요와 더 밀접한 공급은 ②인데 4월이면 이 루트가 막힌다. 양도세 부담이 커져 집을 팔려 하지 않을 테니 공급 감소 효과가 나타나 가격이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해 다주택자 양도세 인상을 예고하며 시행 시기를 올해 4월로 멀찍이 잡은 것은 그 전에 집을 팔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지금쯤 시장에 매물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서울 주택시장 분위기는 거꾸로 가고 있다.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팔려는 사람이 적어 매도자 우위 시장이 됐다. 귀한 매물이 한 건 거래되면 다음 매물은 가격을 올려 나온다. 거래 절벽인데 집값 오름세는 멈추지 않았다.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부동산 시장의 상승론이 ‘수요와 공급’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작전세력의 치밀한 전략이나 현란한 경제용어가 동원된 분석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경제 원리에 기초해 시장은 굴러가고 있다. 서울 부동산은 경제 전문가들이 내놓는 정책과 원론 수준의 경제 이론으로 무장한 시장의 한판 대결처럼 돼 버렸다.

지금의 서울 집값, 강남 시세표는 결코 정상일 수 없다. 부동산 정책이 이를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기대한다. 그러려면 정책과 시장이 매번 따로 노는 디커플링 현상부터 해소돼야 할 것이다. 같은 대책을 놓고 정부와 시장 참여자가 다른 전망을 하는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 정책 입안자들은 시장의 생각을 좀 더 연구해야 할 듯하다. 수요와 공급 그래프부터 다시 챙겨보면 좋겠다.

태원준 온라인뉴스부장 wjtae@kmib.co.kr

많이 본 기사

포토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