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병호] 쓸어담는 게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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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손병호] 쓸어담는 게 외교

입력 2018-01-1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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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자꾸 엎질러지기 때문에 외교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이 없으면 외교가 설 자리도 없다. 주고받고 양보하고, 뺏거나 뺏기기도 하는 게 외교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목격했듯 결과가 180도 뒤집어지기도 하는 게 국제외교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의 요즘 태도는 아주 배타적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요즘 입만 열었다 하면 “단 1㎜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놓고 하는 말이다. 1㎜도 안 움직이겠다는 건 국가 간, 또 외교의 세계에서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하는 독선적 표현이다. 일본 아사히신문도 “스가 발언과 같은 경직된 자세는 건설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한·일 위안부 합의 논란이 몇 년 째 계속되고 있어 안타깝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합의여서 현 갈등상태는 예견된 것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것은 우선 합의 자체가 두 당사국 간 ‘충분한 교섭’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일본 외교가에도 널리 퍼져 있는 위안부 합의의 주된 배경 중 하나는 미국의 압박설이다. 중국과 북한에 맞서 한·미·일 3국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였던 미국이 한·일에 공조의 걸림돌이던 위안부 합의를 조기 매듭지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한·일이 2015년 당시 국장급 협의를 10여 차례 진행했지만, 여전히 합의를 발표하기에는 미흡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해 12월 합의가 전격 발표돼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고, 지금까지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니, 합의의 핵심인 ‘사과’ 문제도 얼렁뚱땅 처리됐다. ‘아베 내각 총리대신은 위안부로서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라는 문구가 사과와 관련된 표현의 전부다. 이마저도 일본 외무상이 대신 읽었다. 이에 대해 피해 할머니들은 직접 사과가 아닌 대리 사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아베 신조 총리가 하와이 진주만 공습 추모비나 이스라엘 유대인 학살 추모관을 직접 찾아가 전쟁범죄를 반성한 행보에 비춰서도 턱없이 부족한 사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아베는 과정이 어찌됐든 국가 간 합의이고, 불가역적인 합의여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한국은 골포스트를 자꾸 옮긴다”고 비난한다. 이 ‘골포스트’ 표현은 아베가 한국을 비판하기 위해 단골로 활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를 배제했고, 또 ‘대리 사과’에 그친 점에 비춰보면 ‘골포스트’ 얘기를 하는 건 논리비약일 수 있다. 실제로는 아베가 한 번도 축구장에 나타나지 않았으면서 골포스트를 옮긴다고 주장하는 것일 수 있어서다.

위안부 문제는 비록 한국 정부가 협상 대리인으로 나섰지만, 우선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피해자 할머니 간에 풀 일이었다. 한국 정부는 ‘브로커’였다. 불행하게도 2015년 12월 합의는 부동산 중개인이 제 집도 아니면서, 일본과 집 매매 계약을 체결한 꼴이 됐다. 그러니 집 주인이 환장할 노릇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인감도장을 찍었고, 자신들은 집값도 지불했으니 거래가 끝났다고 말한다. 일본 말대로 거래는 됐지만, 불공정한 거래이고 엉뚱한 피해자가 생긴 거래가 지금의 합의다. 이 지점에서 외교가 필요한 것이다. 일본의 주장이 맞을 수 있지만, 상대국의 피해자를 못 본 척 하는 것 역시 좋은 외교는 아니다. 골치 아픈 상황에서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해내는 게 외교다. 아베의 직접 사과는 지지 기반과도 관련돼 있어 이끌어내기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베가 직접 사과에 준하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위안부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기도 하다. 그 딜레마를 타개할 해법을 한국과 일본 외교 당국이 찾아내야 할 때다.

손병호 국제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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