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삼성 리움의 빈자리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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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손영옥] 삼성 리움의 빈자리 아쉽다

입력 2018-01-10 17:14 수정 2018-01-10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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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문화계 뉴스로 몇몇 언론이 ‘삼성미술관 리움의 부재’를 꼽았다. 든 자리가 아니라 난 자리가 뉴스가 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리움은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여파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예정됐던 기획전을 올스톱했다. 소장품을 중심으로 상설전만 숨죽인 듯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동시대 미술 후원자 역할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선언’ 같았다.

그 빈자리가 아쉽다는 목소리가 요즘 유독 많이 들린다. 24일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리움 역할론’은 더 자주 회자된다. 올해의 작가상은 미술계의 장원급제에 비유할 만한 상이다. 4명 후보 가운데 박경근 작가가 리움이 45세 이하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격년제로 수여하는 2016년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받았다. 2014년 수상자인 이완 작가는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직행했다. 말하자면 리움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은 미술 그라운드에서 연타석 홈런과 안타를 날린 것이다.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은 원래 최종 1명에게 작가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9명을 뽑아 기획전 인 ‘아트스펙트럼’전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2001년 시작했다가 10주년을 맞으면서 그 가운데 1명을 뽑아 작가상도 줘서 주목도를 높였다. 아트스펙트럼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안타는 더 많다. 이형구, 문경원, 김아영 작가가 베니스비엔날레로 진출했다. 김성환 작가는 미술인의 로망인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탱크 갤러리에 초청됐다. 이번에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오른 송상희 작가도 아트스펙트럼 출신이다.

상의 권위는 상금에 있지 않다. 아트스펙트럼 작가상 상금도 겨우 3000만원이다. 뽑힐 만한 사람을 뽑았다는 공감대가 전문가들 사이에 형성될 때 위상은 절로 올라간다. 아트스펙트럼(작가상)이 그랬다. 국내 기업이 유망한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공모전은 여럿 있다. 금호 영아티스트, 두산연강예술상, 송은미술대상, OCI 영크리에이티브스…. 타율은 아트스펙트럼이 최고다. 자연 중량감도 높아지고 있다.

그 비결이 궁금했다. 많은 이들이 삼성의 자본력만을 이야기한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시스템이 있다. 그리고 애정이 있었다.

아트스펙트럼은 큐레이터가 작가를 추천해 함께 전시를 열어 보여준 뒤 심사위원이 심사하는 방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아트스펙트럼 전시가 기획전이긴 하지만 실제론 젊은 작가 한 명, 한 명에게 개인전을 열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인전의 집합체인 셈이다. 그래서 미래 가능성에 대한 주목도를 더 높일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작가 1명당 큐레이터 1명이 붙는데, 이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꿈도 못 꿀 일이다. 통상 큐레이터 1∼2명이 전체를 전담하는 게 서글픈 미술계 현실이다.

처음엔 리움의 자체 큐레이터만이 추천하다가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큐레이터를 합류시킨 것도 높이 살만하다. 추천위원으로 참여했던 외부 인사는 “후보 작가를 추천해 달라는 연락을 1년 전에 받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미리미리 준비하는 일은 한국에선 거의 드문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더욱이 작가도 아닌 추천자에게 왜 추천했는지를 프레젠테이션하도록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에르메스상, 송은미술대상 등 다른 공모전도 후보를 추천해봤다는 그는 대개는 추천글 하나 달랑 던져주는 게 전부라고 귀띔했다. 또한 2명을 추천했다가 토론 과정을 거치며 추천 위원 스스로 1명으로 압축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는 “추천 과정에서 굉장히 공이 들어가게끔 유도하는 시스템”이라고 평했다.

삼성이 대통령을 갈아 치운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욕을 먹고 있다. 그래도 잘한 건 잘했다고 칭찬해야 한다. 리움은 올해도 전시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2018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에 대한 언급도 없다. 잘한 건 살려야 한다. 폐기가 아니라 잠시 중단이기를 바란다.

손영옥 문화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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