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강철비는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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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강철비는 무서워

입력 2018-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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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 힘겨웠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부가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안팎으로 우환이 많았다. 특히 ‘막말’이라고 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막말 배틀’로 인해 전쟁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북한에서 또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지는 않았는지, 괌에 사는 사람들이 대피소동을 벌이지는 않았는지, 미국에서 ‘한반도 불바다론’ 따위의 강경발언을 쏟아놓지는 않았는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야말로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이런 차에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가 나왔다. ‘국가는 국민이다’라는 묵직한 외침으로 천만 관객을 폭풍 오열하게 만든 ‘변호인’ 이후에 그가 새롭게 내놓을 메시지가 궁금했다. ‘강철비’는 감독 자신이 시나리오를 쓴 웹툰 ‘스틸레인’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이 용어는 1991년 미국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이 이라크군에 맞서 ‘사막의 폭풍 작전’을 수행할 때 사용한 다연장로켓(MLRS)을 가리킨다. 한 번 발사하면 공중에서 다시 작은 폭탄으로 흩어져 축구장 3배 면적을 초토화시킬 만큼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해 ‘강철비’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우리나라에도 1998년 도입돼 현재 96문이 전방에 배치돼 있다.

영화는 스틸레인이 개성공단에 떨어지면서 시작된다. 공격 목표는 때마침 그곳을 방문한 북한의 권력서열 1호다. 경호원들뿐만 아니라 공장 노동자들까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파편에 맞아 떼로 죽어나간다.

한데 놀랍게도 이 가공할 무기를 쏜 주체는 미국이 아니다. 남한도 아니다. 북한 내부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로만 ‘쏜다, 쏜다’ 하지 실제로는 쏘지 않는 김정은이 못마땅해 군부 내 강경파가 들고 일어났다.

물론 이 상황은 허구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장소든지 안보를 빌미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세력은 있기 마련이다. 이미 두 차례의 군사 쿠데타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영화가 그리는 상황이 반드시 허구이지만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어쩌면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 ‘있음직한’ 상황을 숨 가쁘게 스크린 위에 펼쳐 놓는다. 남한 내 강경파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쪽을 택한다. 다만 우리 군에 핵무기가 없다는 게 문제다. 전시작전통제권마저 미국에 귀속돼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영원한 우방’ 미국에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실시해 달라고 사정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해서 기어코 핵전쟁이 촉발된다. 미국이 핵미사일을 날리자 이를 감지한 북한이 역시 핵으로 대응한다. 그 둘이 일본 해상에서 충돌하니 일본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상황이 복잡하게 꼬이자 미국은 남한 정부에 등을 돌린다. 이미 1905년 을사늑약에 앞서 체결된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확인된 바, 미국의 이런 태도는 그리 낯설지 않다.

영화는 다행히 더 이상 확전되지 않고 이 선에서 봉합된다. 그러나 인류가 또 한 차례 세계대전을 겪는다면 그 시발은 한반도임을 충분히 각인시켰다. 그러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고 강변한다. 나아가 어떤 세력이 방해하든지 통일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영화에서는 남과 북의 두 ‘철우’가 이 일에 앞장선다. “분단국가의 국민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해 더 고통 받는다”는 깨달음이 이들을 평화지킴이로 이끌었다.

새해와 더불어 북쪽에서 날아든 반가운 소식으로 모처럼 한반도에 봄기운이 만연하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는 북한 1호의 전언에 이어 지난 9일에는 판문점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제발 이 분위기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새해에는 평화가 꽃비처럼 내렸으면.

구미정(숭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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