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전철] 시간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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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전철] 시간의 주님

입력 2018-01-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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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로운 시간이 열렸다. 그가 우리의 잠과 인생을 다시 깨었다. 새해 타임캡슐은 우리의 고유한 삶으로 다시 귀환했다. 시간의 의미를 헤아린다. 시간은 각자에게 반복 불가능한 유일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너무나 보편적이기에 그 육중한 가치를 망각하기도 한다. 시간은 자연적으로 출현하는 듯하다. 그러나 시간은 은총이 허락한 자연이다. 하여 시간에 대한 태도는 인격적이며 신앙적일 수밖에 없다. 하늘로부터 도착한 시간의 서신을 어떻게 맞이하면 좋을까. 시간의 백지 서신에 우리는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세밑의 뼈아픈 후회는 빠른 시간의 유속과 그를 보내는 아쉬움에 내밀히 닿아 있다. 지나간 시간의 공터에 우리 인생은 누추하고 쓸쓸하게 비친다.

레비나스는 고독을 시간의 부재로 말한다. 순수한 영원도 고독이며, 순수한 순간도 고독이다. 시간을 강렬히 경험하지 못하는 생의 연약함에서 고독을 만난 것일까. 그는 시간을 넘어선 구원, 시간이 없는 구원 모두를 거부했다. 오히려 시간과 더불어 다가오는 구원과 하나님을 갈망했다. 고독과 유사한 시간에 대한 다른 정서는 불안과 후회다. 불안은 시간을 잘 향유하는지 물을 때 다가온다. 불안은 인간이 피조물이기에 경험하는 정조이다. 인간의 불안은 우리의 시간이 창조주로부터 멀어질 때 드리워지는 인생의 적막한 그림자이다. 인간이 아닌 천사나 악마는 불안을 알까.

고독이 시간의 부재이며 불안이 시간성의 운명이라면, 후회는 시간의 반성이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아도 후회했고, 사랑해도 후회했다. 가끔 인생의 미래가 과거보다 점점 더 짧아진다는 생각을 가질수록 후회가 커진다. 분명 지금 여기는 낙원이 아니며 우리의 삶은 여전히 사막 한가운데서 흔들리고 있다. 하나 지나간 시간과 인생의 화살을 어떻게 다시 잡을 수 있을까.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에 등장하는 사형수의 마지막 5분은 인간에게 시간이 얼마나 고귀한지 생생하게 보고한다. 사형수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 그는 동료들과의 이별에 2분, 걸어온 삶의 회상에 2분,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위하여 1분을 쓴다. 마지막 시간 그가 바라보는 저 풍경과 살아있음의 생생한 감각들. 사형수가 경험한 시간의 밀도와 강도는 어떠하였을까. 우리는 오늘의 5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우리의 시선은 고독, 불안, 후회의 그늘을 이제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핵심은 새 시간이 우리 인생에 이렇게 허락되었다는 것. 이 선물은 고귀하지만 유한한 선물이라는 것. 그리고 시간은 인생의 아름다운 축제이며 구원을 향한 여정이라는 것. 한국에도 잘 알려진 독일 신학자 미하엘 벨커 교수가 방한했다. 그는 전날 살인적인 강연 스케줄로 피곤했지만, 다음날 호텔 로비에서 미소와 함께 아침 인사를 이렇게 건넨다. “오늘, 새로운 날, 새로운 창조의 시간입니다.”

종교적 감수성은 오늘,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한다. 지금 이 순간은 영원한 현재요 하늘의 은총이 세상에 구현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신앙은 매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더욱 갈망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의 뜻이 우리 가운데 사랑의 열매로 열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시간의 주님이시며 우리는 사랑으로 시간을 채워야 할 것이다. 시간의 충만한 채움에서 영원히 현존한다. 그렇다. 지금 만나는 하루는 74억명 어느 누구도 아직 경험하지 못했던 전적으로 새로운 시간이다. 우리 인생의 하루가 전적으로 새로운 창조의 사건 아니었던가. 아침과 함께 다가오는 새 하루는 우리의 삶이 생생한 정오의 태양 아래에 있음을 알려주는 하늘의 종소리다.

하나님은 시간의 주님이며 우리는 그 시간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피조물이다. 오늘의 시간과 삶은 그의 은총이다. 우리 삶에 활짝 열린 시간을 기쁘게 완성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전철 한신대 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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