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고승욱] 다시 읽는 12·28 위안부 합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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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고승욱] 다시 읽는 12·28 위안부 합의문

입력 2018-01-1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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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가 한·일 관계의 최대 현안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다. 이 문제는 해방된 지 40년이 넘도록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만주 731부대처럼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데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1991년 8월 14일 모든 게 달라졌다. 그날 종로5가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실에서 김학순 할머니가 수치심을 딛고 세상으로 나섰다. 17세이던 1941년 중국 북부 철벽진이라는 곳의 일본군 부대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던 참혹한 과거를 털어놓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제가 점령했던 아시아 국가 곳곳에서 증언이 잇따랐다. 위안부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된 것이다.

이후 몇 년 동안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과정을 되짚으면 한·일 두 나라 모두 상당한 진정성을 갖고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1965년 한·일협정 대일청구권 8개 항목에 위안부 문제가 포함되는지를 두고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와 일본 대법원은 끝내 다르게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 양국 정부는 협정문 문구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다투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김 할머니를 비롯해 피해자들이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자 즉각적인 진상조사에 착수해 1개월여 만인 1992년 1월 일본군이 위안부를 직접 관리한 사실을 인정한 가토 고이치 관방장관의 담화(가토 담화)를 발표했다. 며칠 뒤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는 노태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해 우리 국회에서 “죄송하다. 마음으로부터 반성의 뜻과 사과를 표명한다”고 연설을 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1년8개월에 걸친 광범위한 조사 끝에 ‘위안부 모집은 강압을 포함해 본인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는 내용을 담은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명의의 담화(고노 담화)를 냈다. 이것이 1993년 8월까지 상황이다. 김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한 지 2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이후 양국 정부는 피해자를 위한 후속대책에 집중했다. 외교적으로는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해결 방식은 곧 위기를 맞았다. 두 나라 모두 내부적으로 거센 역풍에 직면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처벌·배상을 요구하는 피해 할머니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거부하는 우익세력이 결집했다. 이들은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한 모욕적 언사를 이어갔다. 언제까지 사과를 계속하느냐는 ‘사과 피로증’, ‘한국은 움직이는 골대’라는 말이 공감대를 넓혔다. 심지어 내각에서 고노 담화 수정론까지 제기됐다.

12·28 위안부 합의는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무작정 적폐라고 손가락질할 일이 아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사죄 표현은 미야자와 총리의 국회 연설과 다를 게 없지만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라는 말이 들어갔다. 피해자를 위한 사업에 사용되는 돈이 일본 정부의 예산임도 명백히 했다. 아직까지는 일본 정부의 사죄가 후퇴하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가 피해자를 위한 사업을 착실히 실시하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미래형으로 밝힌 점이다. 10억엔을 내면 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는 과거형이 아니다. 시민단체의 활동을 제약하는 것 같은 정당치 못한 내용이 들어간비공개 합의 내용을 감안하더라도 우리가 약점을 잡힐 게 별로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2·28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당연하다. 합의문 어디에도 그런 구절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에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하도록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냉정하게 봐야 한다. 위안부 문제같이 보편적인 가치와 관련된 문제를 정부 협상으로 푸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협상에 매달려서는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괜한 호들갑이었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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