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호석] 외국에서만 알아주는 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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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호석] 외국에서만 알아주는 한지

입력 2018-01-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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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한 번도 한지를 사간 적이 없어 조금은 서운하다.” 한지 중요무형문화재 한 장인의 말이다. 천년을 간다는 한지. 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전통한지에 대한 정책적 배려나 활용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최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한지의 가치를 인정하자 국내에서 관심이 반짝 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이 꼼꼼한 시험을 통해 한지를 문화재 복원용 소재로 선택하는 과정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민족문화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 그리고 기초 자료가 빈곤한 전통문화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지의 우수성은 뛰어난 보존성에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닥나무 품종과 제지 기술의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광복이 된 지 70여년이 지났지만 한지의 원형 자료는 제대로 남아 있는 게 없다. 필자가 백방으로 찾아봤지만 닥나무 품종은 물론 품종별 특성, 인피섬유에 대한 연구자료 등 전통한지에 대한 기초 연구 성과를 볼 수 없었다. 더 심각한 건 2015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한지 원형을 재현하고 훈장의 영예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한 ‘훈장 용지 개선 사업’ 외에는 전통 제지 기술에 대해 깊이 있게 조사·연구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국의 한지 무형문화재 장인들을 비롯한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전통한지 진흥을 위한 대토론회’가 열렸다. 발표 논제는 ‘전통한지 재료와 제조 기술의 문제’ ‘닥나무란 무엇인가’ ‘조선시대 한지와 현대 한지의 물리 화학적 특성 비교’ ‘기록 보존용 전통한지 활용 실태와 전망’ 등이었다. 필자는 전통한지의 원형이 무엇인지, 원형이 어떤 이에 의해 지켜졌고 일제 강점기에 어떻게 변형됐으며 복구가 가능한지, 전통의 계승이 한국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발제했다. 두 번째 발표자는 전통한지의 재료가 되는 한국 토종 닥나무 품종이 애기닥나무와 꾸지나무의 교잡종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지금 사용되고 있는 닥나무는 우량 품종이 도태된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 발표자는 조선시대 한지와 현대 한지의 물리 화학적 특성을 비교해보니 현대 한지가 조선시대 한지에 미치지 못한다며 주원료, 초지 방법, 건조, 마무리 공정 등의 문제에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마지막 발표자는 역사와 문화재 속에만 머물고 있는 전통한지의 진흥을 위한 7가지 실천과제를 제시했다.

세계가 먼저 알아줄 정도로 뛰어난 품질의 한지인데도 국내에서는 오히려 외면받고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장인들이 행자부의 훈·포장 용지 개선 사업에 호응해 전통한지 원형에 근접한 수준의 한지를 생산하고 있음에도 수요가 부족해 사용이 미미한 실정이다. 상훈법 시행령 및 정부표창규정에 훈·포장 및 대통령·국무총리 표창 증서를 한지로 제작한다는 근거가 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활용되지 않는 전통문화는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다. 한지는 소중한 전통자산이고 현실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정보를 가진 성과물이다. 한민족의 문화지도인 문화 원형은 현재도 필요하고, 후대를 위해서도 보전돼야만 한다. 전통한지를 문화산업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진흥을 모색해야 할 때다. 우리는 전통의 부름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응답이자 미래에 대한 의무다.

김호석 한국화가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