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기자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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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기자의 질문

입력 2018-01-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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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쯤 됐겠다. 장관도 지내고 여당에서 영향력 있던 재선 의원과 둘이서 저녁을 먹던 자리였다. 평소 취재하면서 제법 신뢰도가 쌓인 관계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터놓고 주고받다 국회의원들이 민감한 정국 현안과 관련해 슬쩍슬쩍 흘리는 말이 과연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참으로 분간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 한참 생각하더니 그가 하는 말 “그건 당신이 그 현안에 대해 공부를 별로 안 해서 그럴 거야.” 30대 초반의 기자가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장차관 지내고, 별 서너 개씩 달고 나온 노회한 50∼60대 의원들의 의중을 콕 짚어내기는 애당초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 말, 그 이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기자들도 근수가 있어. 질문 내용 들으면 대번에 알아. 알고 묻는지 모르고 묻는지, 알아도 핵심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못 읽는지. 그런 게 좀 쌓이면 진중하게 대해야 할 사람, 좀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별이 돼. 근수가 측정되면 어쩔 수 없이 내가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더라고.” 질문을 보면 기자의 실력이 측정되고 자신의 태도가 결정된다는 거다. 가슴을 찌르는 말이다.

지난 10일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의 형식과 내용을 놓고 여러 말들이 있는 모양이다. 튀는 옷 색깔이나 인형을 들고 나와 질문자로 지명받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야당에서는 초등학교 모습 같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신선해서 좋다는 의견도 있다. 미리 짜고 하는 회견보다는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많다. 형식이야 청와대가 원칙을 세워 주관하는 것이니 그렇다 치고, 기자들의 질문 내용 자체가 알차지 못했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질문에는 대통령이 곤혹스러워할 만한 내용이 없었고, 눈이 확 뜨이는 것도 없었다. 곤혹스럽게 답변한다는 것은 충분히 기사가 된다는 뜻이고, 국민이 궁금해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준비를 안 해서 그런 걸까, 공부한 사람들이 질문자로 선택받지 못해서 그런 걸까. 질문 자체가 없어 참모들이 긴장하고 준비한 답변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대통령은 “기자들이 짜임새 있게 잘 질문해준 거 같다”고 평가했다는데 암만해도 듣기 좋으라고 한 말 같다. 대통령은, 참모들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근수를 어떻게 봤을까.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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