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남북 단일팀 비사… 南 참가 저지 하려 北 “무조건 유일팀”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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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남북 단일팀 비사… 南 참가 저지 하려 北 “무조건 유일팀” 고집

입력 2018-01-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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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선수들이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경기를 앞두고 악수하고 있다. 남북한 당국은 이 대회에서 단일팀을 구성하려고 했으나 북측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결렬됐다. 국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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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아시안게임 때 왜 무산됐나

우리측, 개별참가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면 선수들
출전 기회 차단된다 판단
‘강압적 요구’라며 거부

北이 단일팀 제안한 것은
南 참가 저지하려는 의도


공식 기록을 남긴 남북 스포츠 단일팀은 1991년의 청소년축구와 탁구뿐(국민일보 1월 11일자 1면 참조)이지만 그 이전에도 대규모 단일팀의 계획이 있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단일팀 선수단을 뽑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하지만 북한이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로 회담을 결렬시키며 단일팀은 성사되지 못했고, 이 대회의 남북 체육교류 성과는 공동응원에 머물렀다.

89년부터 90년까지 9차례의 남북체육회담 결과 기록에 따르면 장충식 당시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 등 우리 측 협상단은 북한의 단일팀 제안을 “‘두 개의 조선은 인정할 수 없다’는 명분”이라고 파악했다. 또한 “베이징에 태극기 물결을 저지하고, 메달 경쟁에서 우리 측의 우위가 드러나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협상 직후 우리 측은 북한이 “경기력이 직접 대비되는 것은 피하고, 체면을 유지하려 한다”고 감지했다. 북한은 국적 구분 없이 선수들을 한데 뒤섞어 훈련을 실시하고, 남북 코치들이 비공개 협의를 통해 출전 선수를 선발하자고 제안했다. 선수단 구성은 남북이 5대 5의 균형을 맞춰야 하고, 공동사무국은 판문점에 두자고 제안했다. 단장은 공동단장이어야 한다는 것이 북한의 요구였다.

이때 우리 측이 내세웠던 것은 스포츠 정신이었다. 선수 선발은 다른 고려사항 없이 공정히 이뤄져야 하며, 따라서 공개적인 선발전을 거쳐 실상 그대로의 경기력을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우리 측은 스포츠 원칙과 운영상 필요를 들어 “선수가 많이 선발된 쪽에서 선수단장 역할을 맡자”고 했다. 실제 훈련과 선발전을 지원할 수 있도록 공동사무국은 서울과 평양 양쪽에 두자고 주장했다.

회담 초반에는 남북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북한이 문익환 목사의 사법처리를 시비하며 2차 회담 이후 7개월 가까이 대화에 응하지 않기도 했다. 다만 89년 10월 3차 회담 재개 이후 북한은 조금씩 우리 측의 제안을 수용했다. 선발전 공개, 단일단장제, 서울 평양 양쪽에 공동사무국을 설치하는 방안까지 합의됐다.

이때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단일팀 선수단이 쓸 호칭까지도 결정됐다. 중국어로 표기할 때에는 ‘可禮亞(가례아·코리아)’라고 적기로 했다. 선수단의 단기는 “흰색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 지도로 한다”고 결정했다. 오늘날 통용되는 ‘한반도기’의 시초인 셈이다. 선수단의 단가는 1920년대 아리랑으로 하기로 정해졌다.

북한이 우리 측이 제안한 공동추진기구 구성을 구체적 검토도 없이 순순히 받아들이자 우리 측은 의구심을 가졌다. 장 단장 등은 “매우 중요한 제안을 충분한 내용 검토도 없이 전면 수용하고 기본합의서 서명만을 서두르는 태도를 보인다”며 “과연 북측이 회담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 그들의 진의는 무엇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보고했다. 미군과의 팀 스피리트 훈련 등을 이유로 북한이 갑자기 선수단 출전을 미뤄 국내 여론을 흔들 수도 있다는 것이 당시 협상단의 판단이었다.

우리 측은 공동위원회 발족과 합동훈련 등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빠짐없이 검토, 10개 조항과 10개 부칙으로 이뤄진 기본합의서를 제시했다. 이에 북한은 회담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8차 회담부터 갑자기 회담 결렬을 운운하더니, 90년 2월 8일의 9차 회담에서는 “절대로 ‘별개팀’으로 가지 않으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유일팀’으로 출전한다는 데 합의하고 내외에 선포할 것”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우리 측은 ‘강압적인 요구’라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회담은 결렬됐다. 우리 측은 “단일팀 가능성이 99%라 해도 1%의 장애요인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개별참가 여지를 남겨두는 유보조항이 없다면 아시안게임을 바라봐 온 스포츠 선수들의 기회가 차단된다는 생각이었다. 회담이 무산된 뒤 우리 측은 “북한이 남북단일팀 구성에 수반될 대규모 체육 선수·관계자들의 왕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부 사정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이 단일팀 구성을 논의한 것은 애초 한국의 아시안게임 참가를 저지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우리 협상단의 최종 판단이었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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