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혼란] 정부 오락가락 행보… 은행도 우왕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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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혼란] 정부 오락가락 행보… 은행도 우왕좌왕

입력 2018-01-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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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논의에 착수하자 신한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제공하는 실명확인 시스템 도입을 무기한 연기하고 있다. 12일 한 시민이 서울시내 신한은행 지점에서 나오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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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확인제 도입하려던 은행
정부 규제방침 불분명해지자
시스템 가동 잇따라 연기
카드社는 결제금지 내주 논의

“정부가 금융권에 총대 메게 해”
규제 번지수 틀렸다는 지적

정부의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폐쇄와 관련해 ‘갈 지(之)’자 행보가 은행권으로도 전이되고 있다. 은행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가상화폐 신규 계좌 개설을 금지하고 기존 계좌는 실명확인 시스템을 구축한 뒤 서비스를 재개할 예정이었으나 정부의 규제 방침이 불분명하자 시스템 도입을 속속 연기하고 있다. 정부가 문제의 핵심인 가상화폐 거래소는 놔두고 지급과 결제를 담당할 뿐인 은행과 카드 회사의 팔부터 비틀고 나서자 금융권 전체로 혼란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신한은행은 오는 20일 계획했던 가상화폐 실명확인계좌 시스템 도입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12일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시스템 자체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신한은행은 빗썸 코빗 이야랩스 등 3개 거래소에 공문을 보내 오는 15일부터 기존 계좌의 입금도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출금은 허용하되 입금은 중단한다는 것으로 기존 계좌의 이용을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다.

IBK기업은행도 실명확인 입출금 시스템 가동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KEB하나은행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역시 정부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추가로 나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명확인 시스템 가동 날짜 역시 정부 가이드라인이 없어 15일인지 22일인지 혼선을 겪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가상화폐와 관련해 길게는 국내 거래소 폐쇄, 짧게는 거래를 최대한 불편하게 한다는 목표를 세운 뒤 은행과 카드사를 동원하고 있다는 게 관련업계의 분석이다. 가상화폐 관련법이 마련될 때까지 금융사의 결제시스템 감독 강화를 통해 투기자를 압박하고 선의의 피해자는 조기에 이탈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본다.

국내 8개 카드사 연합체인 여신금융협회는 다음 주부터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에서의 국내 카드 결제를 금지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은행권 신규 계좌 발급 금지로 결제 통로를 찾지 못한 국내 투자자들이 신용카드로 해외 거래소에서 직접 결제하는 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여신협회 관계자는 “지금도 해외 거래가 확인되면 추가 거래를 제한하는 형식으로 자율 통제를 시행 중”이라면서 “거래 금지 관련 정부 당국 요청이 있었기에 구체적인 방식을 논의 후 확정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상화폐 거래를 불편하게 만들라’는 정부 기조에 따라 은행과 카드사가 전면에 나서 총대를 메고 있지만 규제 번지수가 틀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날 시중은행의 계좌 축소 방침이 나오자 인터넷에선 ‘뱅크런 각오하라’ 식의 협박성 반응이 터져 나왔다.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정부 대신 애먼 시중은행이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타깃이 된 것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정부가 우선 가상화폐의 법적 성격부터 재규정하고 요건을 갖춘 거래소는 양성화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지금 같은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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