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톺아보기] 한국선교의 숙제 ‘선교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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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톺아보기] 한국선교의 숙제 ‘선교이양’

입력 2018-07-0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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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앙 악카핀 태국기독교단 목사가 1957년 미국장로교 태국선교부와 체결한 선교이양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최승근 태국 선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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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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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미국장로교 태국선교부와 태국기독교단(CCT)은 선교사들의 재산과 권한을 이양한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한다. 1840년 시작된 미국장로교의 태국 선교는 실로 엄청난 역사를 썼다. 태국 전역에 교회를 개척했고 현지인 지도자들을 양성했다. 인접 국가로 태국인 선교사가 파송돼 사역도 했다. 지금까지도 태국의 신학교들은 인접국 교회 지도자 양성의 요람이 되고 있다.

‘1957년의 선교이양’은 117년 동안 태국에 뿌린 선교 인프라 모두를 태국인에게 넘겨주는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이로써 미국교회는 역할을 다했고 이후의 태국 선교는 태국인들에게 맡겨졌다. 무엇보다 제국주의적 선교의 시기에 시작된 태국 선교가 태국 현지 교단의 권위와 자격을 인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것은 선교역사에 있어 큰 의미가 있다.

물론 선교이양 후 미국교회가 완전히 발길을 끊은 건 아니었다. 계속 CCT와 선교 동역을 했다. 복음을 ‘전한 교회’가 ‘받은 교회’ 속으로 들어가 협력하는 선교의 선순환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태국 북부 치앙마이의 파얍대학교를 비롯해 방콕 중심부의 CCT 총회 본부 등이 모두 미국장로교가 남긴 흔적들이다. 치앙마이의 종합병원도 선교의 결실이다. 물론 선교사들이 남긴 많은 재산이 태국교회가 성장하지 못한 이유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CCT도 자생력을 잃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1961년부터 69년까지 태국연합신학교에서 교수로 사역한 일본인 고수케 고야마가 집대성한 ‘물소신학’도 어쩌면 이런 자생적 토양 위에 뿌리내린 결실일지도 모른다. 물소신학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토착신학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장로교가 태국교회와 맺었던 선교이양협정은 60여년 지난 지금 한국교회에 교훈을 준다. 선교사 파송 2위라는 대기록을 경험한 한국교회가 전 세계에 뿌린 복음의 씨앗과 선교 자산은 가치로 평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하다.

이제 한국교회 앞에 큰 산이 놓여 있다.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선교의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어야 한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도착하는 것이 시작이라면 선교 자산을 현지 교회에 이양하고 떠나는 것이 끝이다. 사실 이 같은 선교이양을 한국교회도 경험했다. 한때 외국인 선교사들이 분열 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주요 임원을 맡던 시절이 있었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 한국인들에게 지도력을 넘기고 돌아갔다.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이나 연세대, 장로회신학대 등이 모두 선교사들이 남긴 흔적이다.

선교이양의 출발점은 현지인 지도자들과의 동역에 있다. 현지인 지도자들을 믿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런 신뢰가 없으면 이양은 불가능하다. 넘겨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선교는 실패한 것이다.

선교는 가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눠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이양이라는 숙제가 한국교회 앞에 주어졌다. 과거 선교사들이 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숙제를 풀어야 할 시간이 됐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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