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줄잇는 난민 신청자 엉터리 통역에 눈물… 드러난 난민심사 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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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줄잇는 난민 신청자 엉터리 통역에 눈물… 드러난 난민심사 허점

난민전문통역인 오류 많아 실제 요건 갖췄어도 탈락

입력 2018-07-09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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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 수행한 68건 중 33건 신청자가 피해 본 사례도 나와
통역인 교육과정 약식 그치고 불인정 사유서 한글로만 제공 면접조서 잘못 작성되기 일쑤


A씨는 쫓기고 있었다. 복수를 피해 고국 이집트에서부터 뒤를 밟히며 타국을 떠돌던 참이었다. 고향에도 법이 있었지만 경찰에게 보호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요르단과 말레이시아까지 건너가 봐도 안전한 곳은 없었다. 그렇게 객지를 떠돈 지 7년째이던 2014년 3월 말, A씨는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 온 지 한 달 뒤 A씨는 난민 자격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심사에는 28개월이 걸렸다. 20대의 젊은 한국인 J씨가 난민심사의 아랍어 통역을 맡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A씨는 모든 게 잘될 줄 알았다. A씨의 사례는 2년 전 제정된 난민법 첫머리의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의 예에 해당했다.

그러나 기다림 끝에 돌아온 건 난민불인정 통지였다. 그의 진술은 엉뚱한 내용으로 바뀌어 한글로 된 면접조서에 남아 있었다. 처음 난민신청서에 적었던 절절한 사연이 모두 거짓이고, 한국에 온 목적은 단지 취업뿐이며 이집트로 돌아가도 상관없다고 쓰여 있었다. 제정신이 박힌 난민신청자라면 할 수 없을 진술이었다. A씨의 이의신청은 지난해 1월 기각 당했다. 내용도 모르고 서명했던 조서가 결정적 이유였다.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한 끝에 A씨는 다행히 지난해 10월 서울 행정법원으로부터 난민불인정처분 취소 결정을 받았다. 판사가 난민심사 당시 아랍어통역을 맡았던 J씨의 잘못을 인정한 덕이었다. J씨는 재판 진술에서 A씨 심사 건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잘못을 부인했다. J씨는 이후 통역 업무를 그만두고 군에 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난민법 제정 뒤 난민전문통역인 제도가 시행됐지만 통역의 질을 보장할 수 없어 A씨 같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난민심사 과정의 잘못된 통역은 난민신청자들이 생존권을 박탈당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도를 보강하고 통역 교육 투자를 늘려 제대로 된 인재풀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민일보가 8일 난민인권센터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법원이 A씨에 대한 난민심사 과정에서 아랍어통역 오류를 인정한 J씨는 난민전문통역인을 하면서 68건 이상 통역을 했다. 난민인권센터는 최소 4개국 출신 난민신청인의 심사 18건에서 J씨가 통역 오류를 범했으며, 이를 포함한 33건 이상이 비슷하게 난민신청자에게 불리하게 이뤄졌다고 파악했다.

취재 결과 J씨는 아랍어 구사능력은 있지만 대학 시절 아랍어 전공을 하지도, 일반적으로 전문통역사 자격의 관문으로 불리는 통번역대학원 아랍어 과정을 이수한 적도 없었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건 정부가 제도를 제대로 보강하지 않은 잘못이 크다. 난민전문통역인 선발 지침과 관련해 법무부 관계자는 “일정 학력 이상 등 내부적으로 선발 지침을 뒀지만 공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난민전문통역인 제도는 시행 초기부터 8∼9시간에 그치는 약식 교육과정이 문제점으로 지적을 받아왔다. 가장 최근 난민전문통역인을 모집한 2015년에도 교육일은 11월 20일부터 21일까지 단 이틀뿐으로 8∼9시간 수준이었다. 법무부는 해마다 최소 1회 보수교육을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지은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부원장은 “(시행 초기) 당시 10∼12주에 걸친 장기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여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난민법 시행령 8조 1항은 난민전문통역인을 ‘법무부장관이 정하는 교육과정을 마친 사람’이라고 규정할 뿐 이외 별 기준을 두지 않고 있다. 교육이 수년째 약식으로만 유지되는 이유다.

난민심사에서 잘못된 통역을 받더라도 난민신청자들은 증명하기가 힘들다. 난민불인정 사유서는 번역 없이 한글로만 제공돼 도움이 없으면 탈락 이유도 알 수 없다. 심사 과정을 촬영해 달라 요구할 수 있지만 이를 아는 난민도 드물 뿐더러 촬영내용을 요구해도 법무부는 안전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다. 녹취록 등 대안도 있지만 제공된 적은 없다. 때문에 핵심절차인 난민면접조서 작성 때 통역인이 조서의 질문이나 난민신청자의 답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아도 알아챌 방법은 없다. 잘못 작성된 조서는 A씨 예처럼 결정적 탈락 사유가 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통역 인력풀이 극히 적다는 점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5년 222명이던 전체 난민전문통역인은 현재 174명으로 줄었다. 특히 12명이던 아랍어 통역인은 폭증한 수요에도 불구하고 되레 10명으로 감소했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이 국내 유일하게 아랍어과정을 갖췄지만 한 해 수료자는 10명 수준이다. 반면 아랍어권인 이집트와 시리아 출신 난민신청 건은 1994년부터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4570건에 달한다. 인력풀이 없다보니 2014년 시리아 난민신청자들이 몰릴 때는 학부생을 끌어다 통역으로 쓰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는 장기적인 통역인력 육성에 무심하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외무고시를 통해 아랍어능통자를 5급 공무원으로 뽑았지만, 외무고시 폐지와 함께 이 제도는 없어졌다. 이후 외교관후보자 채용에 뒀던 아랍지역전형도 올해로 마지막이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지난해부터 뽑는 언어 경력채용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처우가 열악한 9급에 불과하다. 그러잖아도 소수언어 공부에 많은 자원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전공자들의 동기부여마저 없앤 꼴이다.

법무부는 최근 제주도에 예멘 난민신청자가 몰리며 논란이 일자 기존에 2명뿐이던 통역을 4명으로 늘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투입된 통역 4명은 모두 난민전문통역인이 아닌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아랍어 경력채용 공무원이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의 한 교수는 “사태를 지켜보며 수준 있는 통역사를 정부가 임시라도 고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통번역대학원에선 아무도 연락받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베테랑 전문통역사는 “A씨 사례는 통역사 개인보다는 시스템의 잘못으로 봐야 한다”고 평했다. 이어 “난민통역은 분류상 사법통역의 영역”이라면서 “그 나라의 정서와 법리판단, 여파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전문적 영역에 그만한 책임감을 갖추지 못한 인력을 들여보낸 것 자체가 정부의 인식 부족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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