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지금, 미술] ⑤ 구현모 ‘의족을 한 나무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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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지금, 미술] ⑤ 구현모 ‘의족을 한 나무조각’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까지가 인공인가

입력 2018-07-11 04:01 수정 2018-07-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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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모 작가가 8일 개인전 ‘후천적 자연’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 전시장에서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구 모양의 왼편 작품은 ‘유니버스’(지구본 위에 아크릴), 나뭇가지 모양의 오른편 작품은 느티나무의 학명인 ‘젤코바’(황동)이다. 최종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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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우레탄폼·에폭시·아크릴). PKM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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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나무·황동 등 혼합재료). PKM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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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임플란트 에피소드’는 과로 한국 사회의 표본처럼 회자된다. 그는 노무현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일하면서 과로로 치아가 빠지는 바람에 인공치아 10개를 심어야 했다. 그만큼 많이는 아니라도 중년 이후면 누구든 입안에 인공치아 1, 2개쯤 갖는 것은 일반적이다. 심지어 “입안에 그랜저 한 대 넣고 다닌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회사 선배도 있다.

그렇다. 우리 몸은 점점 인공물과 공존한다. 예쁘게 보이기 위한 성형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의학기술의 발달 덕분에 생존과 생명을 위한 의족과 인공 심장, 인공 관절 같은 인공 장기이식도 보편화되는 추세다. 이쯤 되면 선천적인 것만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시대가 돼버렸다.

이런 세상사를 미술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는 것 같은 작가를 만났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PKM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는 구현모(44) 작가. 전시 제목이 ‘후천적 자연’(8월 3일까지)이니 ‘인공 신체 시대’와 기막히게 맞아떨어진다.

전시장 광경은 처음엔 뜨악할 수 있겠다. ‘이게 뭐야, 나뭇가지잖아. 저런 건 나도 만들 수 있겠어’하는 작품들이 설치돼 있어서다. 미술이라 하면 보통 사람은 따라 할 수 없는 정확한 재현으로 감탄을 자아내거나, 혹은 엄청난 크기에서 오는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전시에 나온 것들은 대체로 아주 작은 설치미술 작품이고, 좀 크다 싶으면 철사처럼 가늘어서 스펙터클함도 없다.

자세히 보면 재미있다. 나뭇가지 설치 작품을 보자. 나뭇가지를 세웠는데, 혼자 힘으로 서기 힘든 나무의 한쪽 끝에 작가는 수직의 황동 다리, 즉 ‘의족’을 붙였다. 그래서 반듯하게 설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의족’은 장애인 육상 선수의 그것처럼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돼버렸다.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 이 나무조차 인공물로 대체해 버린다. 큰 나뭇가지를 잘게 분질러 주물을 뜬 뒤 그걸 원래 모습대로 이어붙인 것이다. 그러곤 여기에 수직의 인공 조형물을 슬쩍 붙이니 수직이 주는 인공의 느낌과 대조를 이룬 탓에 나뭇가지는 황동인데도 천연의 나무 같은 느낌이 배가된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까지가 인공인가.

“그래요. 틀니, 의족, 인공 장기…. 과학기술이 진보해 가다 보면 그 끝은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지더라고요. 더군다나 지금은 인공지능(AI) 시대 아닌가요.”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가 자연과 인공의 이분법적 구분에 대한 문제 제기임을 분명히 했다.

인공과 자연에 대한 그의 관심은 20년 가까이 된다. 홍익대 도예과 졸업 이듬해인 2002년 가진 개인전 ‘큐브-네이처’에서 자연과 인공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때가 자연과 인공을 병치하는 것이었다면 독일 유학 후인 지금의 작업은 그 둘을 합체했다고나 할까.

그리하여 자연을 인공물로 시각화한 작품도 있다. 둥근 달을 내걸거나, 작은 구름을 설치하고, 돌을 부착했다. 달은 버려진 지구본을 재활용해 달 표면처럼 색칠했다. 작가는 “달은 인간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설치물이다. 그런데도 우리 눈에 평면으로 보이고, 또 늘 그걸 올려다본다”며 “오브제를 통해 실제의 그것처럼 덩어리로 실감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구름 작품은 공사 현장에서 창문 틈을 메우기 위해 쓰는 우레탄폼을 활용했다. 이 발포성 화학 재료는 흔들어주면 공기와 만나 부풀어 오르다 시간이 지나면 굳는다. 그 성질을 활용한 것인데, 원하는 근사한 구름 형태를 얻기 위해 물에 재료를 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

“‘구름 거품’은 반자연적인 이미지이지요. 화학적 느낌을 주니까요. 하지만 그거야말로 반인위적이지 않을까요. 발포돼 자연의 원리대로 굳어가는 것, 용암이 흘러가다 굳어서 돌이 되는 것과 뭐가 다를까요.”

작가는 이런 작업 행위를 곤충채집에 비유해 ‘자연 채집’이라 부른다. “그냥 보면 되는데 잡고 싶었어요. 달, 구름, 나무, 심지어 번개조차 소유하고 싶었어요. 작가인 제겐 그리고 만드는 일이지요.”

나뭇가지, 구름 등은 그 시각적 외모에 반했다는 자연물이다. 그는 그렇게 반했다는 자연의 곡선, 부정형의 형태에 인공의 수직 수평 형태를 첨가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자연의 곡선과 인공의 직선이 합쳐진 데서 오는 조형적 긴장감이다. 그 긴장감이 구현모의 작업세계가 선물하는 시각적 즐거움이다.

“저 역시 그 긴장감을 즐기고 있더라고요. 인공적인 뭔가를 넣어 형태를 바꾸는 게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작은 돌도 작품처럼 내놓았는데, 이것도 천연의 옥 덩어리 자체를 비계(飛階) 같은 인공 구조물 위에 뒀다. 그렇게 자연과 인공이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20세기 초 이탈리아 미래파는 자동차 등 기계문명이 가져올 미래를 낙관하며 속도 등을 작품으로 찬양했다. AI 시대를 맞는 우리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인공물조차 후천적 자연으로 명명하는 인식으로 보건대, 작가 구현모의 작업세계는 AI 시대에 대한 낙관을 담은 것임이 분명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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