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세상을 영적으로 분별하는 단어들과 친해져라

국민일보

[저자와의 만남-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세상을 영적으로 분별하는 단어들과 친해져라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태도’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입력 2018-07-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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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가 지난 4일 자신의 새 책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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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단어로 산다. 한 사람의 삶은 몇 개의 단어로 남는다. 그 언어가 내 속에 공명을 일으키는 순간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내게 가치 있는 단어들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을 영적으로 분별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 그런 단어들과 친해지고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삶의 질에 잇대기 위해 애쓴다면 조금은 세상이 맑아지지 않을까.”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청파교회에서 만난 김기석 목사는 새 책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태도’(비아토르)의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말에 이런 말을 돌려줬다. 이번 책은 생명과 향유, 자족과 경탄, 정의와 환대, 평화, 순명, 어울림, 진실한 말 등 평생 그가 추구해 온 가치에 대한 26편의 글을 담고 있다. 기독교출판에선 흔치 않은 ‘누드 사철 제본’(180도로 펼쳐 볼 수 있게 하는 제본방법)을 했고 이중섭의 그림도 수록했다. 김 목사는 “이중섭의 그림을 보면 저릿한 아픔 속에서 천진한 모습이 느껴진다”며 “내가 지향하는 삶이기도 해서 그의 그림이 좋았다”고 했다.

김 목사는 현시대를 ‘중심의 부재 시대’라고 진단한다. 그는 “끝없이 중심을 지향하고 주류사회로 편입돼야 한다고 떠밀면서 오히려 삶이 비참해지고 주변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믿음은 즐겁게 주변화되기를 택하는 것”이라며 “주변화돼 있다고 속상해하거나 비참해하면 안 된다”고 했다.

중심이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왜곡된 욕망을 추구하느라 삶을 허비하고 있다. 기독교인도 다르지 않다. 김 목사는 “그런 욕망을 따라 살지 않아도 괜찮은 삶의 방식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거꾸로 교회가 먼저 욕망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엉터리로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답을 내놔야 할 교회가 오히려 카피한 욕망을 추구하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처럼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제일 미워하는 사람은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며 “떨어져서 내 삶을 바라보는 능력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같은 좌표평면 안에서 보면 남보다 낫기 위해 아웅다웅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내가 접했던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신앙이란 하나님이 주신 상상력을 통해 이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를 상상할 수 있는 믿음이다. 그는 “자본주의 중독에서 깨어나는 것은 다른 삶을 상상하는 것”이라며 “로마가 지배하고 있던 세상에서 예수가 보여줬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 곧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요즘 청년들의 삶에서 ‘함께’라는 가치가 사라져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오늘날 청년들이 더 힘든 것은 남이 만들어 놓은 행복의 루트를 따라가려니 그런 것”이라며 “상상력을 갖고 행복을 구성하는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하는데, 향유하는 삶에서 타자의 공간이 너무 없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함께 살아가는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나의 욕망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 내 삶이 내게만 국한되지 않고 공공의 영역에서 어떻게 의미 있게 받아들여질까, 여기에 상상력이 결합될 때 자본주의 세상이 우리를 함부로 뒤흔들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 땅에서 상상력을 갖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려면 성경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김 목사는 “성경은 제국주의를 해체하는 담론, 끊임없이 자기 확장력에 사로잡혀 타자를 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담론을 보여준다”며 “우리가 성경을 읽는 까닭은 내가 서 있는 토대를 뒤흔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경읽기를 통해 철저히 깨어지고, 그렇게 깨어진 상태에서 다시 만들어가는 게 바로 신앙이라는 얘기다.

그는 목회자이자 문학평론가로, 이 시대에 청정한 설교, 서늘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빛을 내며 반짝이는 글을 통해 깨달음을 던지는 목회자다. 그런 그에게도 혹 비뚤어진 욕망이 있을까. 그는 “어떤 자리, 얼마만큼 무얼 하겠다는 유형적인 특별한 욕심은 없다”며 “다만 모든 사람이 페르소나(연극배우가 쓰는 가면)를 쓰고 살 듯 사람들이 나에게 씌워준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가면에 충실하게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있다”고 했다.

사람 김기석의 인생을 보여주는 한 단어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마도 헤맸다는 게 아닐까”라며 오규원 시인의 ‘만물은 흔들리면서’를 인용했다. “만물은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만큼/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잎인 것을 증명한다.”

돌아오는 길, 내 삶을 표현하는 단어는 과연 무엇일까. 그 질문이 마음에 작은 물결을 일으켰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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