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태원준] 광산, 터널,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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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태원준] 광산, 터널, 동굴

입력 2018-07-13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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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산호세 광산에 광부 33명이 매몰됐다. 갱도가 무너져 지하 700m 대피소에 고립됐다. 생존 사실은 붕괴 17일 만에 확인됐다. 지상에서 내려보낸 음향채집 장비에 ‘33명 대피소에 있다’는 메모가 붙어 올라왔다. 10월 13일 전원 구조되기까지 이들이 벌인 사투는 ‘33’이란 영화로 만들어졌다. 나흘치 비상식량으로 69일을 버티며 우유를 한 모금씩 공평하게 나누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감동적인 스토리의 배경에는 인간의 탐욕이 있었다. 이들이 갱도로 들어갈 때 작업을 마치고 나오던 야근조는 “밤새 땅이 울었다”고 했다. 지축을 흔드는 이상 조짐에도 민영 광산은 채굴을 강행했다. 1889년부터 ‘심부 채광’으로 구리와 금을 캐던 곳이었다. 광맥을 따라 채굴하다 광질이 나빠지면 갱도를 버리고 더 깊이 새 갱도를 판다. 버린 갱도에 안전장치를 충분히 해둬야 하는데 늘 뒷전이었고 이 사고도 그런 갱도가 무너져 발생했다.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하정우가 출연한 영화 ‘터널’은 흡사한 지하 고립 상황을 모티브로 삼았다. 가상의 이야기인데 많은 관객이 세월호를 떠올렸던 건 현실성을 갖췄기 때문일 테다. 여기선 구조하는 과정에 인간의 갈등이 빚어진다. 구조작업이 성과 없이 길어지자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당초 의지는 잦아들고 터널 공사를 재개하라는 여론이 높아졌다. 지상의 이런 움직임을 감지한 터널 속 하정우는 “나 아직 살아 있는데…”라고 혼잣말을 했다. 냉정한 여론의 무게를 견뎌준 구조대장 덕에 그가 지상으로 나온 것은 39일 만이었다.

태국 동굴에 갇힌 소년들이 무사히 구조됐다.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었는데 기적처럼 17일 만에 전원 생환했다. 이번 재난에는 인간의 탐욕이나 갈등이 끼어들지 못했다. 문제를 꼽자면 기껏해야 아이들의 호기심과 부주의 정도였고 안타까운 희생자가 나왔지만 구조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한국에 살다보니 ‘재난=인재’란 등식이 뇌리에 박혀서 그런지 사람의 잘못을 따질 일이 없다는 게 더 기적 같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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