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림 숨은 계곡 물길 따라 걷다보면 폭염 피로 저만치

국민일보

원시림 숨은 계곡 물길 따라 걷다보면 폭염 피로 저만치

계곡 트레킹의 명소 강원도 인제

입력 2018-08-0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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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아침가리계곡을 찾은 트레커들이 하얀 포말로 가득한 뚝발소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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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계곡에서 즐기는 수상 레포츠 리버 버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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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開仁)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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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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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무더위와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다. 이럴 땐 계곡을 걸어보자. 물바람이 땀을 씻고 물소리가 귀를 씻어준다. 국내에 계곡 트레킹 명소가 여럿 있지만 강원도 인제가 손꼽힌다.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데다 산 좋고 물 맑기로 이름나 있기 때문이다.

인제군 기린면 현리에서 418번 지방도가 조침령을 넘어 양양으로 이어진다. 방태산(1444m)과 곰배령 사이에 난 길이다. 인제군과 홍천군 경계에 자리한 방태산에는 ‘삼둔 사가리’라 불리는 곳이 있다. 예부터 난리를 피해 숨어들던 오지를 일컫는다. 삼둔은 월둔·달둔·살둔 등 숨어 살기 좋은 마을을, 사가리는 아침가리·적가리·연가리·명지가리 등 깊은 계곡을 말한다.

여름철 가장 인기 있는 아침가리는 아침나절이면 밭갈이가 모두 끝날 정도로 농사지을 땅이 작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자로 아침 조(朝), 밭갈 경(耕)을 사용해 조경동이 됐다. 기린면 방동리에 숨어 있는 오지 중 오지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접근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구룡덕봉, 응복산, 가칠봉, 갈전곡봉 등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원시의 상태 그대로 남아 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만큼 수량이 풍부하고 골짜기가 시원하기로 이름났다.

한때 아침가리계곡에는 수백 명의 화전민이 살았다. 울진·삼척 무장공비사건 이후 모두 소개(疏開)되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됐다. 상류에 민가가 사라져 아침가리계곡은 맑고 청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워낙 외진 곳이라 휴대전화도 불통이다.

방동약수에서 출발하면 방동리고개∼조경동교∼아침가리계곡∼진동1리에 이르는 11㎞다. 산길 5㎞, 계곡 6㎞다. 계곡 트레킹만 원하면 갈터쉼터에서 아침가리계곡을 따라 조경동교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방법도 있다. 왕복 12㎞로 6∼7시간이 걸린다. 계곡 트레킹이 부담스러우면 진동1리에 쉴 곳을 마련하고 진동계곡이나 아침가리 초입에서 물놀이를 해도 좋다. 10분 정도 올라가면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이 있다.

방동리 갈터마을에서 방태천 건너편에 보이는 계곡으로 진입한다. 낙엽송 조림지 사이로 부드럽게 난 길을 지나면 계곡을 막아 만든 작은 보(洑)가 나온다. 가족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정겨운 모습으로 물장구를 치고 있다.

보를 지나면 인공구조물을 전혀 볼 수 없는 환상적인 계곡 구간의 연속이다. 물굽이는 구절양장처럼 이어진다. 물줄기가 굽이치는 곳마다 자갈밭과 모래톱이 드러나 있다. 깊은 소에 헤엄치는 물고기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물이 맑고 깨끗하다. 물 가운데 우뚝한 바위도 다양한 모양에 화려한 색을 입고 눈을 즐겁게 해준다.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하늘을 덮은 산과 울창한 숲, 철철 흘러넘치는 물줄기뿐이다. 계곡 양 옆의 숲 안쪽에 작은 폭포들이 맑은 물을 보탠다.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이다. 계곡을 따라가다 물을 건넌다. ‘첨벙 첨벙’ 계곡물을 헤치기도 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시원한 물소리를 음악 삼아 계곡을 따라 걷는다. 더우면 맑은 계곡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면 된다. 수시로 만나는 소(沼)에서는 배낭을 벗어 놓고 물놀이를 즐겨도 된다. 물에서 자맥질하다 보면 한여름 무더위가 저만치 물러나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계곡 입구에서 4㎞ 정도 상류로 올라가면 뚝발소가 있다. 아침가리계곡에서 가장 깊다. 계곡을 막은 바위 절벽 아래 검은 물빛의 웅덩이가 섬뜩하다. 3∼4m 깊이에 소용돌이가 심해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자세히 보면 세차게 쏟아지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물고기들의 힘찬 몸짓이 애잔하게 와닿는다.

조경동교에 닿으면 계곡은 이곳의 다리에서 고개를 넘어 온 찻길을 만난다. 다리 오른쪽에 매점이 있고, 왼쪽 산자락에는 민가도 한 채 보인다. 실질적인 아침가리계곡의 비경이 끝나는 곳이다. 다리를 지나 계곡 상류로 이어지는 길은 출입금지다. 명지가리∼구룡덕봉 삼거리∼월둔교 구간의 비포장길은 백두대간트레일로 지정돼 있어 인터넷 사전예약자만 입장할 수 있다. 폐교된 방동초등학교 조경분교와 텅 빈 마을이 남아 있다고 한다.

여기서 발길을 되돌려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아니면 고개 넘어 방동약수터 쪽으로 돌아간다. 300년가량 된 엄나무 아래에 깊이 팬 암석 사이에서 솟아나는 방동약수는 탄산과 철, 망간, 불소 등을 함유하고 있어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설탕만 넣으면 영락없이 사이다 맛이 난다.

인제에서 이색적인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미산(美山)계곡이다. 오대산 깊은 골에서 발원해 홍천과 인제를 아우르며 흘러가는 내린천이 계방천, 자운천 등과 만나 폭을 키운 계곡이다. 산자락 사이로 실 같은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이 아니라 어지간한 강과 견줄 만큼 넓고 깊은 물줄기다.

이곳에서 리버 버깅(river bugging)을 즐길 수 있다. 리버 버깅은 뉴질랜드에서 개발된 수상 레포츠로, 급류를 이루는 계곡에서 가능하다. 리버 버깅을 하는 사람을 멀리서 보면 물 위에 뒤집혀 버둥거리는 벌레의 날갯짓 같아 이름지어졌다. 1인승 공기 주입식 급류 보트로, 앞이 툭 터진 ‘U’ 자형 리버 버그와 두께 5㎜ 슈트, 구명동의, 헬멧, 발을 보호하는 슈즈와 추진력을 제공하는 오리발, 방향 전환용 장갑 등이 필요하다.

장비를 착용한 뒤 약 5.5㎞ 떨어진 승선장으로 이동한다. 리버 버그 타는 법, 물속에서 적응하는 법, 리버 버그가 전복될 경우 탈출하고 다시 타는 법 등을 반복적으로 배운다. 30분 정도 강습을 거치면 초보자도 쉽게 탈 수 있다. 급류가 무섭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도 강사가 곳곳에 배치돼 신속하게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초급 코스는 승선장에서 소개인동까지 2.7㎞ 2시간, 고급 코스는 소개인동을 지나 용바위까지 약 4㎞, 3∼4시간 걸린다. 소개인동을 지나 한 바퀴 크게 휘감아 도는 곳에 용바위가 있다. 리버 버깅 코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험난한 곳이다. 출발 지점에서 비교적 평온하게 움직이다가 하얀 포말이 일어나는 구간에 접어들면 리버 버그는 급류를 타고 넘기도 하고, 뒤집혀 떠내려가기도 한다.

미산마을에는 2011년 천연기념물 제531호로 지정된 개인(開仁)약수(사진)가 있다. 개인산 중턱에서 솟아나는 약수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080m)에 위치해 있다. 물 좋은 데다 풍광까지 더해져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에 그만이다. 미산약수교를 건너 산으로 이어지는 좁은 도로는 깔끔하게 포장돼 있다. 약수터 초입에 펜션과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서 개인약수까지는 1.5㎞, 천천히 걸으면 1시간 서두르면 45분 걸린다.

길에 들어서면 물소리가 청아하다. 작은 폭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선선한 기운을 내뿜는다. 땀이 흐르고 힘들어질 만하면 눈에 들어오는 이야기 팻말이 쉼을 선사한다. 약수로 지은 푸르스름한 밥맛 덕에 모진 시집살이를 견뎠다는 할머니, 멀리서 온 위장병 환자가 업혀왔다가 걸어나갔다는 목격담 등 9가지 전설이 심심함을 달래준다.

주황색 돌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이면 약수터에 도착한 것이다. 약수에서 나온 철분이 산화해 녹이 슨 돌이다. 샘은 작지만 기포와 함께 퐁퐁 솟아난다. 알싸하면서도 시원하다. 주변에 우거진 수백 년 된 전나무 등 고목과 푸른 이끼가 청청한 계곡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 여행메모
방태산 자연휴양림 인근 막국수·감자전·산채정식 별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아침가리계곡에 가려면 서울양양고속도로 인제나들목에서 내린다. 31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가 ‘진방삼거리’에서 방동리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418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방동약수터 입구를 지나 아침가리계곡 건너편 갈터에 닿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인제군 기린면 현리까지 가서 진동리행 버스를 타면 된다. 미산계곡을 가려면 인제나들목에서 나와 우회전한 뒤 오미재를 넘어 상남삼거리에서 직진한다. 이어 상남우체국을 끼고 446번 지방도를 타고 10㎞ 남짓 가면 닿는다.

방태산 자연휴양림(033-463-8590)의 산림휴양관을 이용할 수 있다. 휴양림 인근에 민박집이 산재해 있다. 진동리 버스종점인 갈터마을 일대에도 갈터쉼터(033-463-5082) 등 펜션과 민박집이 여럿 있다.

방태산 자연휴양림에서 가까운 방동막국수(033-461-0419)가 맛집이다. 막국수(사진), 편육, 감자전 등을 내놓는다. 갈터쉼터 바로 옆 진동산채(033-463-8484)는 산채비빔밥과 산채정식을 맛나게 한다.

계곡 트레킹할 때 휴대전화나 귀중품 등을 넣을 수 있는 방수용 비닐봉지 및 지퍼백을 준비하면 좋다. 신발은 아쿠아슈즈보다 헌 등산화를 신는 것이 낫다. 계곡에서는 쉽게 체온이 떨어질 수 있어 얇더라도 체온을 보존할 수 있는 바람막이 등은 필수다. 칼로리 높은 초콜릿 등도 준비한다. 물 속 바위는 물이끼가 끼어 미끄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미끄러운 곳은 신발로 몇 번 문지르고 딛는다. 등산 스틱은 몸의 균형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계곡을 수없이 건너다녀야 하기 때문에 여벌의 옷이나 등산화를 준비해야 한다. 폭우가 내린 직후나 한창 비가 쏟아질 때는 트레킹을 포기해야 한다.



인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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