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진보라고 하기엔, 보수라고 하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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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우 칼럼] 진보라고 하기엔, 보수라고 하기엔

입력 2018-08-08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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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두 날개가 꼭 민주당과 한국당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민주당 vs 정의당’ ‘민주당 vs 바른미래당’ ‘바른미래당 vs 정의당’
이런 구도가 될 수도 있다


리영희 선생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를 펴낸 때는 1994년이다. 진보든, 보수든 권력이 진실을 은폐·왜곡·날조하려는 것에 대항해 진실을 찾아내 그것을 세상에 내놓을 목적으로 쓴 글들을 엮은 책이다.

24년 후 이 책이 다시 한 번 회자됐다.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이 보수의 부활을 읍소하면서 책 내용을 인용해서다.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이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한국당은 가장 마음에 들었을 듯하다. 선거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에 지나치게 힘이 실리면 힘의 균형이 무너져 국정이 독선으로 흐를 수 있다는 한국당 논리를 뒷받침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 논리는 한국당이 보수일 때 비로소 성립한다. 한국당이 과연 보수인지 숱한 이견들이 제기되는 마당이다. 심지어 보수진영 내에서조차 “한국당은 보수가 아니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보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시대에 따라 그 기준도 변하게 마련이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한국적 상황에서 대북관은 오랫동안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가장 핵심적 잣대였다. 그리고 이 잣대는 과거에 비해 강도가 약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유용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지금은 누구나 통일을 얘기하지만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라 말했다고 불온세력으로 몰렸던 적이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니다. 권력 유지와 승계를 위해 고비 때마다 북한 변수를 이용한 이른바 ‘반공보수’들이 보수의 대표 행세를 했다.

그럼, 더불어민주당은 진보인가. 이 물음에 선뜻 수긍하기 쉽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진보일지 몰라도 민주당과 그 구성원을 진보라고 규정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무리가 따른다. 민주당이 진보라면 그보다 왼쪽에 있는 정의당은 급진인가. 흔히 문재인 정권을 ‘진보’로 규정하는데 한국당계 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얘기이지, 정치학적 관점에선 미국 민주당의 리버럴에 가깝다. 최저임금 등 정부 정책을 두고 보수층은 ‘급진적’이라고 하는 반면 진보층은 ‘대선 공약에 비해 너무 후퇴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문재인정부 정체성은 모호해진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대척점에 서 있으나 소속 의원 상당수의 정치성향은 엇비슷하다. 조경태 의원처럼 민주당에 몸담았다 자유한국당으로 소속을 옮기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든 자리와 난 자리를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두 당의 차별성은 크지 않다. 두 당의 거리보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간극이 더 크게 느껴진다. 최근 이슈가 된 국회 특수활동비 문제를 보더라도 민주당과 한국당은 개선에 방점을 찍은 반면 정의당은 즉각 폐지를 주장했다.

새로운 ‘평화보수’ 건설을 주창하는 하태경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을 보수로 정의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지난해 SNS에 “보수진영이 김 대통령을 버리는 것은 보수진영의 손해다. 보수도 YS와 DJ를 보수 정치계의 대선배로 모실 때가 됐다”고 적었다. YS·DJ의 정치적 뿌리가 같으니 생뚱맞은 얘기는 아니다. 그랬기에 노태우 대통령이 여소야대 정국을 반전시키기 위한 합당의 우선순위로 당시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제1야당 평화민주당을 염두에 뒀던 거다.

최근 주목되는 가장 큰 정치지형 변화는 정의당의 상승세다. 여전히 민주당과는 큰 격차이나 한국당을 제치고 지지율 2위에 오른 여론조사도 있었다. 일시적인 노회찬 효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민주당 지지층 이동이 주원인이라는 게 여론조사 기관의 분석이다. 문재인정부 우클릭에 불만을 느낀 일부 민주당 지지층이 정의당 지지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허니문 효과가 사라지면서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전당대회 시즌이다. 민주평화당은 지난 5일 전당대회에서 정동영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오는 25일과 다음 달 2일 각각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구성한다. 지도부가 바뀌면 으레 변화가 따른다. 평화당 정 대표는 진보당과의 진보경쟁을 예고했다. 바른미래당은 한국당을 대체하는 새 보수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좌우 두 날개가 꼭 민주당과 한국당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민주당과 정의당,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이 될 수도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당만이 살아남는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찰나 도태된다. 민심의 변화는 순간이다.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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