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노 신앙 계승자와 그들의 발자취] 佛 개신교인, 1534년 ‘벽보사건’으로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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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노 신앙 계승자와 그들의 발자취] 佛 개신교인, 1534년 ‘벽보사건’으로 수난

(2) 위그노 후예 학자가 말하는 ‘위그노’란

입력 2018-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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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위그노들이 프랑스 리용에서 예배를 드리던 모습. 외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건물에 창문을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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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앙뒤즈 인근 수양관에서 지난달 30일 열린 제1회 한불신학포럼에서 파트릭 카바넬 소르본대(개신교 역사학)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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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노(Huguenot)란 프랑스 초기 개신교도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직까지 불분명한데 당시 개신교인이 박해를 피해 밤에 집회를 했기 때문에 ‘몽유병자’를 뜻하는 의미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중세에 사용된 작은 단위의 화폐를 뜻하기도 했다. 모두 소수였던 개신교도를 비하하는 표현이었다. 오늘날 프랑스 개신교인들은 차별의 상징이었던 위그노 대신 ‘개신교인’ ‘개혁교회 신자’ 또는 ‘칼뱅 교회 신자’로 부른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프랑스 앙뒤즈 인근 수양관에서 열린 제1회 한불신학포럼 발제자 파트릭 카바넬 소르본대(개신교 역사학) 교수는 ‘위그노 신앙 계승자들과 제자들의 삶과 역사’에 대해 발표했다. 카바넬 교수는 17세기 루이 14세 시절 활동했던 위그노 저항군, ‘카미자르’의 후예이자 ‘프랑스 개신교 역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위그노 후예로서 선조들의 역사를 조명했다. 한불신학포럼은 5일까지 이어진다.

카바넬 교수는 프랑스에서 개신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신앙을 표출한 시점을 1534년 ‘벽보사건’으로 봤다. 벽보는 가톨릭의 성찬과 미사를 비판한 내용을 담은 종이다. 벽보 내용은 당시 가톨릭교회와 프랑스와 1세의 분노를 샀고 가톨릭교회 당국과 왕정은 개신교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카바넬 교수는 “이때부터 프랑스 개신교는 다른 유럽국가와 달리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분리와 추방의 길을 걸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개신교회의 중심이 되는 리더그룹은 해외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고국의 신자들에게 책이나 인쇄물 등을 공급했다. 16세기엔 제네바가, 17∼18세기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머리’ 역할을 했다. 카바넬 교수는 “개혁 신학 사상은 해외에서 공급됐고 프랑스 남부에 분포했던 위그노들은 몸으로 박해를 견뎠다”고 말했다.

그는 위그노 박해 역사에서 프랑스 개신교의 정체성을 확립한 네 가지 책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프랑스어성경과 기독교강요, 다윗의 시편, 순교자들에 관한 책이었다. 이들 책은 제네바에서 출판돼 프랑스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 퍼졌고 프랑스어의 영향력도 커졌다. 칼뱅의 기독교강요는 시나 운문의 언어였던 프랑스어를 논증과 합리적 언어로 재탄생시킨 최초의 저작이라고 카바넬 교수는 말했다.

핍박을 받던 위그노에게 1598년의 낭트칙령은 신앙의 자유와 행복을 선사했다. 하지만 태양왕루이 14세가 1685년 낭트칙령을 철회하면서 프랑스는 거대한 감옥으로 변했다. 이때부터 위그노들은 순교자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고 카바넬 교수는 설명했다. 당시 프랑스를 떠난 위그노는 13만∼20만명이었다. 탄압 속에서 위그노는 절대군주 루이 14세에 대해 군사적 저항운동을 전개했다.

카바넬 교수는 “당시 위그노들이 견딜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이집트 아래에서 고통 받던 히브리 민족과 자신들을 동일시했다는 것이었다. 칼뱅의 예정설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던 동력이었다”고 했다. 위그노들은 자신들을 이스라엘 민족에 비유하며 광야 생활(박해)을 견뎠고 하나님이 예정한 신자는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믿음으로 수난을 견뎠다.

한불신학포럼을 주최한 한국 측 성원용(파리선한장로교회) 목사는 “한국교회는 칼뱅과 위그노의 영적 후손”이라며 “이제 한국교회와 프랑스교회가 협력해 복음전파 사역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포럼은 한국교회와 프랑스교회 교류의 현장이었다. 특히 양국 교회가 고난과 저항의 역사를 가졌다는 점에서 역사적 동질감을 공유했다. 한국교회 참가자들도 한국의 신학과 교회, 선교상황을 전달하며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혔다. 임희국(장로회신학대) 교수는 ‘3·1운동과 독립선언의 성경적 의미’, 윤순재(주안대학원대) 총장은 ‘일본 식민지 시대 신사참배 강요와 한국 개신교의 저항’, 박원빈(서울 약수교회) 목사는 ‘한국교회의 탈북자 사역’, 천세종(대구 삼덕교회) 목사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와 신학’, 이은용 한국세계선교사회 사무총장은 ‘대한민국의 선교’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앙뒤즈(프랑스)=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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