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잃어버린 찬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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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잃어버린 찬양을 찾아서

입력 2018-09-1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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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인이 천국에 가 보니 강단에서 예배 인도하고 설교하던 오 목사님이 보이질 않더란다. 그런데 찬양대 홍 집사는 여전히 가운 입고 찬양을 하고 있었다. 오 목사님과 황 장로님은 뭘 하시느냐 물으니 두 분 다 실직 상태란다. 천국엔 두 분에게 마땅한 자리가 없단다.

음악은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구약시대부터 사람들은 음악예술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해 왔다. 리듬은 사람들의 육체(body)를 자극하고 가락은 정신(soul)을 자극하고 화음은 영(sprit)을 자극해 하나님을 만나게 해준다. 특히 합창에는 공동체를 하나로 엮어주는 놀라운 힘이 있다. 그래서일까. 찬송가책이 4부 합창 악보로 돼 있는 종교는 기독교가 유일하다. 1886년 이화학당이 여성들에게 서양음악을 가르치면서 교회에 4부 합창이 시작됐다. 이 합창문화는 사회 전체로 번지기 시작했다. 교회 찬양대는 수많은 음악인을 배출했다. 세계적인 우리 음악인들은 대부분 찬양대 출신이다. 국립 시립 민간 합창단의 구성원도 대부분 찬양대원들이다.

그러나 음악은 수단일 뿐 중요한 건 찬양이다. 찬양의 본질은 무엇일까. 첫째, 찬양은 예배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말씀을 주신다. 그러니 찬양은 하나님과 만나 소통하는 예배다.

둘째, 찬양은 자랑하기다. 부모가 가장 좋아하는 건 자식이 남들 앞에서 “우리 엄마, 아빠 최고”라며 엄지를 척 올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노래할 이유 있네!(I’ve got a reason to sing!)’라는 가사처럼 찬양할 이유, 자랑거리를 찾아내야 한다. 주님이 내게 누구이신지, 내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발견해야 감동 감격이 생긴다. 이것이 찬양의 뿌리다.

셋째, 찬양은 공감이다. 찬양하는 사람은 신령과 진정으로 노래함으로써 하나님과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나아가 예배자들과도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그들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찬양대와 예배자들 사이에는 물리적인 거리와 함께 마음의 거리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찬양곡의 가사를 예배자들에게 충분히 알려주기, 예배자들이 아는 노래 부르기, 예배자들을 합창에 참여시키기 등으로 그 거리를 좁혀줄 수 있을 것이다.

찬양대가 찬양팀에게 배워야 할 것이 있다. 이들은 드럼까지 동원해가며 대중음악 가수들처럼 쉬운 노래를 열정적으로 불러 예배자들과 깊은 공감대를 이룬다. 이에 비해 찬양대의 노래는 너무 고상하고(?) 어렵고 친숙하지 않은 클래식 음악 같다. 찬양대는 또 그 노래의 가사와 곡을 만든 이들과도 공감해야 한다. 그들이 그 노래를 만들 때의 감정을 충분히 이입한 후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 다 생략하고 악보 펴놓고 박자, 음정만 따지며 영혼 없는 찬양을 연습하곤 한다. 그래서 장례식 문상객 표정으로 “기쁘고 기쁘도다”를 노래한다.

평생 찬양대를 지휘해 온 사람으로서 찬양대에 몇 가지 당부하고 싶다. 찬양은 쇼가 아니다. 가운은 나를 자랑하고 과시하지 말라고 입히는 것이다. 주님을 높이려면 나를 감추고 낮춰야 한다. 찬양대와 오케스트라의 규모, 화려한 복장, 찬양 곡의 난이도로 교세를 과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유튜브에 찬양 동영상을 경쟁적으로 게시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찬양의 콘서트화를 경계한다. 콘서트는 관객을 향하는 것이고 찬양은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다. 찬양과 콘서트는 구분돼야 한다. 찬양에서 예배자들은 찬양의 당사자가 된다. 그러나 찬양이 콘서트로 변질되면 예배자들은 구경꾼이 된다. 구경꾼들은 자기 취향에 맞는지 아닌지로 찬양대를 평가한다. 찬양대가 그들을 의식하면 찬양의 본질을 제쳐두고 어려운 곡을 찾게 되고 대원들은 힘겨워진다. 여기에 지휘자의 음악적 욕심이 더해지면 외부에서 성악 전공자들을 동원하게 된다. 이른 바 ‘알바’ 대원. 주일 하루 몇 군데를 뛰는 지휘자 반주자 대원들이 적지 않다.

찬양에서 음악 전문성은 중요하지만 찬양대가 음악 전공자들의 활동 무대가 되는 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사례비를 받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과연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룰 수 있을지, 찬양 활동이 주방 봉사보다 더 고상한 일인지 퍽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요즘 우리 찬양곡이 많이 나오고 있어 참 좋다. 그러나 가사가 신학적으로 적합한지 충분히 살핀 후 발표하면 좋겠다. 어쨌든 우리 삶에서 찬양할 이유를 먼저 발견하자. 그리고 견딜 수 없는 감격으로 노래하자. 삶으로도!

이의용(국민대 교수·생활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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