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그 남자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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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황시운] 그 남자의 사랑법

입력 2018-09-1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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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태어나기 석 달 전, 아버지가 죽었다. 아버지 없는 인생은 신산하고 외로웠다. 남자는 다섯 살 터울의 형이 먼 친척 집에서 머슴을 살아 보내주는 보리쌀로 죽을 끓여 먹으며 유년 시절을 버텼다. 지친 몸을 뉠 방과 죽을 끓일 장작은 어머니가 밤낮으로 품을 팔아 마련했다. 남자의 어머니는 언제나 남자가 먹고 남은 죽에 물을 한 대접 더 부어 끓여 먹곤 했다. 남자에게 머슴을 살러 집을 떠난 형과 묽은 죽만 먹던 어머니는 가슴에 박힌 가시처럼 내내 아픈 존재였다. 형처럼 머슴을 살진 않았지만, 남자도 지게를 질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산, 들, 바다, 가릴 것 없이 일을 찾아다녔다. 남자는 열 살이 훌쩍 넘어서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배움이 빠르고 글과 그림에 소질이 있었지만 국민학교를 끝으로 배움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 시절엔 흔한 일이었다.

청년이 된 남자는 사랑에 빠졌다. 읍내 사진관에 사진이 걸릴 만큼 어여쁜 여자였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뿐이었던 남자는 처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이듬해 첫아이가 태어났고 남자는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남자는 자식들 대하기가 세상 무엇보다 어려웠다. 남자는 소금 가마니를 지고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처럼 일만 했다. 어느 한 시절엔 실제로 열사의 사막 한가운데서 도로를 닦기도 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남자에게 허락된 일자리는 남들이 마다하는 험한 곳에만 있었지만, 남자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남자가 아는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사랑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은 배운 적이 없었다. 자식들은 무뚝뚝하고 고집스러운 남자를 오해하고 원망했다.

남자는 외로웠다. 자식들이 장성하고 식구가 늘었지만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았다. 남자는 외로운 채로 늙었고 외로운 채로 병들었다. 그리고 이제 외로운 채로 죽음을 기다린다. 모든 삶이 외롭다는 걸 알 만한 나이가 됐지만 외로운 자신을 보듬어줄 여유는 미처 갖지 못했다. 모든 시절에 흔한 일이었다.

황시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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