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장윤재]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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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장윤재]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입력 2018-09-14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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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히틀러 암살음모에 가담했다가 체포돼 교수형을 당한 20세기의 순교자다. 그는 ‘값싼 은혜’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값비싼 은혜인데 교회가 ‘회개 없는 용서’를 남발하며 그것을 싸구려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본회퍼 목사는 한걸음 더 나아가 기독교가 ‘비종교적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독교도 하나의 종교인데 무슨 말일까?

본회퍼 목사에게 ‘종교’란 세상을 성(聖)과 속(俗)으로 분리시키는 힘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종교적이 되면 될수록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성의 영역에 바치게 된다. 하지만 본회퍼 목사는 성과 속에 대한 이런 이원론적 분리가 문제임을 알았다. 왜냐하면 당시 독일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만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동안 온 세상의 주인은 히틀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회퍼 목사는 그리스도는 성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온 삶에서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이 비종교적 기독교다. 그의 유명한 ‘옥중서신’에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없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모순되는 말 같지만 심오한 표현이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산다고 말하지만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예수님도 일찍이 가장 종교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하나님이 없는 것을 개탄하셨다. 예수님 당시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신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들 속에는 하나님이 없었다. 반면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던 죄인의 대명사인 세리들은 하나님 앞에 서 있었다. 저 유명한 바리새인과 세리의 서로 다른 기도 모습에서(누가복음 18장) 그것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님은 경건하다는 바리새인의 기도는 듣지 않으시고 소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세리의 기도를 들으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종교적 경건이 아니다. 값비싼 제사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성서는 분명히 말한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공의와 자비다. 정의와 긍휼이다. 바리새인들은 바로 이것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저들은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하나님 없이’ 산 사람들이었다. 종교적 경건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참 경건이 무엇인지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야고보서 1:27) 그렇다. 가장 심오한 경건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종교는 형식이 된다. 위선이 되고 독선이 된다.

많은 기독교인이 ‘코람 데오’라는 말을 좋아한다. 라틴어 코람(Coram)은 ‘앞에서’라는 뜻이고, 데오(Deo)는 ‘하나님’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뜻이다. 우리말에도 “하늘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혹은 “하늘이 지켜보는데 두렵지도 않느냐”는 말이 있다. 이렇게 늘 하늘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 바로 ‘코람 데오’의 삶이다. 그런데 본회퍼 목사는 오늘의 ‘성인이 된 세계’에서 우리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이들이 자라면 부모 곁을 떠나듯, 계몽주의와 과학혁명 이후 사람들은 더 이상 신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거나 급박한 위험에 처할 때에만 신을 불러낸다. 그것이 ‘성인이 된 세계’이다. 이런 세계에서 성의 영역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현실적으로 이제 사람들에게 종교란 삶의 여러 요소 가운데 한 가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본회퍼 목사는 오늘날 이렇게 변두리로 밀려난 성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윤재 이화여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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