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기획] ‘또라이’ ‘대물’ ‘X싸가지’ 혹시 나도 블랙리스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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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기획] ‘또라이’ ‘대물’ ‘X싸가지’ 혹시 나도 블랙리스트에?

성형·미용업계의 도넘은 외모 품평, 회원들 부글부글

입력 2018-09-1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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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미용업계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김모(28)씨는 13일 “성형, 미용, 몸매관리 등 뷰티업계에선 직원들이 고객의 외모나 신체 특징을 별명으로 짓는 게 일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왁싱숍, 피부관리실에서 일할 땐 ‘치루’ ‘대물’ ‘자라고추’ 등의 특징을 별명으로 지어 예약 문서에 적는 것도 봤다”고 고백했다.

최근 한 필라테스 학원 원장이 수강생을 ‘뚱땡이’라고 부르던 것을 들켜 논란이 일자 자진 폐업한 사건을 두고 업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사건 이후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회원의 몸매나 얼굴을 품평하고 별명을 지어 부르는 행태가 일상적이라는 폭로가 터져 나오고 있다. 소비자들은 ‘내 돈 주고도 맘 놓고 서비스를 받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성형외과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박모(26)씨는 “직원들이 간호사만 볼 수 있는 환자 차트 입력란에 “대왕 코” “리프팅 필수” 등 외모를 평가하는 말을 적곤 했다”며 “‘이건 너무 심하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직원 사이에서 ‘왕따’가 됐고 곧 병원을 그만뒀다”고 털어놨다. 20대 A씨는 신림동의 유명 요가학원에서 우연찮게 출석부 관리 파일을 발견했다. 관리 파일에는 ‘재수 없음’ ‘방구 끼고 나감’ ‘버려’ ‘또라이’ 등의 품평이 회원 명단 옆에 적혀 있었다. A씨는 “강사가 사과를 했지만 불쾌해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한 성형·미용업계 종사자는 “고객을 기억하고 다른 직원에게 쉽게 인수인계하기 위해 별명을 짓기 시작하던 것이 점차 조롱으로 간 것 같다”며 “외모나 몸매를 관리해주는 게 일이다 보니 일상적으로 품평이 이뤄진다. 문제 소지가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소비자들은 분노와 우려가 섞인 반응을 보인다. 요가를 배우고 있는 성모(30)씨는 “품평을 문서화까지 하는 건 너무 심하다. 내가 당했다면 모욕죄로 고소할 것”이라고 했다. 헬스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박모(27)씨는 “나도 헬스 트레이너 사이에서 몸매 품평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차라리 집에서 운동하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회원 품평은 발견되기 전까지는 모욕죄 성립도 쉽지 않다. 신종범 누림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죄가 인정되려면 모욕성 발언이 제3자에게도 알려질 ‘공연성’을 띠는지 여부가 입증돼야 한다”며 “단순히 직원들 사이에서 별명으로 불린 건 공연성에 적용되기 어렵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전산망 등에 적혀 있다면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뷰티업계가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것과 달리 관련 종사자들이 지녀야 할 서비스 정신은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어 발생한 문제”라며 “뷰티업계가 외모·몸매, 특정 신체 부분 등 개인적으로 가장 민감한 부분을 다루게 된 만큼 종사자 교육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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