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의 작은 천국] 교회가 빈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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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의 작은 천국] 교회가 빈곤해졌다

입력 2018-10-0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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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포카라에 있는 티베트 난민수용소에서 만난 65세의 쌈둡씨(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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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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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과 세계에 나를 던져 넣는 일이다. 낯선 세계에 나를 던져 넣음으로써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은 반복되어 너무 익숙해져 뒤꿈치처럼 굳은살이 박인 일상의 껍질을 벗겨내고 존재의 속살을 드러낸다. 일상의 굳은살을 벗겨내면 비로소 세계에 대한 촉감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을 때 아름답다. 돌아갈 곳이 없는 여정 가운데 있는 사람은 여행자가 아니라 난민이다. 돌아갈 곳에 대한 기대와 전망이 있는 삶은 아름다운 여행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은 인생의 은유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전제될 때 떠날 수 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 난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삶은 그래서 불안하고 누추할 수밖에 없다. 난민에게 닥친 문제는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존재의 빈곤이다. 이방의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존재의 불안을 더욱 자극한다.

네팔의 포카라에 있는 티베트 난민보호소에서 만난 쌈둡씨는 57년째 난민이다. 일곱 살 때 중국군으로부터 아버지와 형제들이 학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로 도망왔다. 그 후로 그는 57년 동안 네팔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다. 난민 지위도 얻지 못해 신분도 보장받지 못하고 일자리도 얻을 수 없었다. 그와 그의 가족들은 조악한 종교적 상징물들을 만들어 파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그는 나에게 그 조악한 수공예품을 구매해 줄 것을 구걸하였다.

그런데 그를 더욱 불안하고 빈곤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기억에서 모국어가 점점 잊혀지는 일이다. 그의 자식과 손자들의 세대에서 모국어는 이제 사멸되었다. 고향을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를 더욱 슬프게 한다. 태어나고 자란 곳, 고향의 상실은 존재의 뿌리를 허약하게 한다. 이제 고국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쌈둡씨의 자녀들처럼 모국어를 잃어버리고 있다. 영혼의 풍성한 울림 대신 생물학적 감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유물주의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영혼의 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시인과 성직자들이었다. 그들은 난민이 아니라 여행자이며 예언자들이었다. 사람들의 딱딱하게 굳은살을 꼬집어 영혼을 깨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사람들이었다.

질병과 죽음의 공포, 경제적 두려움, 소외의 감정, 욕망 같은 폭력성 앞에 옹졸하게 일그러진 게 인간의 본래 모습이 아니라고 그들은 외쳤다. 그들은 모든 생명이 다 존중받는 평등한 나라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궁극의 나라, 우리의 고향이 육신의 삶 너머에 있음을 얘기했다. 예수님은 그 나라, 우리의 본향(本鄕)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의 삶이 모험을 동반한 여행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시련과 고난을 이기는 힘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희망에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과 사역은 늘 여행 가운데 있었다. 갈릴리의 길 위에서 그의 모든 행적과 사역이 이루어졌다. 길 위에서 복음이 선포되고 치유가 일어났다. 길은 여행자의 몫이다. 하지만 돌아갈 궁극의 고향이 없는 길은 난민의 길이다. 그 길은 불안과 고독의 길이다. 극심한 갈증과 허기를 유발하는 고통의 길이다. 그래서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에게 길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점점 돌아가야 할 고향에 대한 전망을 잃어가고 있다. 교회가 빈곤해졌다. 교회를 다녀도 고향에 대한 전망 없이 오늘 하루의 삶을 위해 하나님께 먹을거리를 풍성하게 내려달라고 애걸하는 난민처럼 빈곤해져 있다. 교인들의 사업을 위한 축복기도와 자녀들의 수능 대박 기원 작정기도회 같은 것으로 우리의 허기를 채우려 한다. 심지어 자식에게 예배당과 그 사업을 물려주는 일도 한다. 고향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고 낯선 이방의 땅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모국어를 잃어가고 있다. 여행자가 아니라 난민으로 살려는 것이다.

<대전 길위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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