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사로] 장벽을 무너뜨리려면

국민일보

[안녕? 나사로] 장벽을 무너뜨리려면

입력 2018-10-12 17:58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기사사진

스크린 속 주인공이 탑승한 차 안에 음악이 흐른다. 화면 왼쪽 상단에 ‘음악 시작’을 알리는 음표 로고가 표시된다. 아래쪽엔 ‘경쾌하고 흥겨운 분위기의 음악 시작’ ‘(온유) 흠흐흐’ 등 상황설명과 대사를 알려주는 자막이 나온다. 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의 배리어프리(barrier free) 버전 상영 모습이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앞이 보이지 않거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을 위해 제작된 콘텐츠다. 기존의 영상 콘텐츠에 화면을 실시간으로 설명해주는 오디오 파일과 화자의 대사 소리·음악 정보를 알려주는 자막을 넣어 상영한다. 마치 눈이 침침하고 귀도 어두운 할머니께 손주가 옆에서 재잘재잘 설명해주는 듯한 환경이다. 장애인이나 고령자가 겪는 제도·물리적 장벽을 허물기 위해 시작된 배리어프리 운동이 문화예술 영역에 적용된 것이다.

모든 이들이 동일하게 권리를 누리는 상태를 ‘평등’이라 부른다. 그 반대엔 ‘불평등’ ‘차별’이란 꼬리표가 달린다. 배리어프리는 1974년 유엔 장애자 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 대한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개념이 구체화돼 건축학계에서 다양한 분야로 확대됐다. ‘평등’을 향한 노력은 물리적 장벽뿐 아니라 법률 정보전달 의식의 장벽 제거로 이어졌다.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마련된 투표소가 생기고 각종 자격시험에서 응시 제한이 사라지는 모습이 그 결과물이다. 이 같은 개선 활동이 운동성·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무엇일까.

“휠체어와 함께 3년을 걸어왔다”는 청년 세 명을 한 교회에서 만난 적 있다. 비장애인이었던 그들은 ‘특별한 소풍’이란 이름으로 서울시내 곳곳을 누볐다. 한 사람이 휠체어에 앉고 한 사람은 안대를 쓴 채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두 사람의 모습을 기록하며 사진으로 남겼다. 이들의 소풍은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지도’로 결실을 맺었다. 지도엔 지하철 역사 내 화장실 위치,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접근성 좋은 문화시설과 식당 등의 정보가 차곡차곡 쌓였다. 청년들은 입을 모아 얘기했다.

“우리 힘으로 장애인에게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평평한 길을 새로 만들어줄 순 없지만 이미 만들어진 곳들을 안내하는 지도는 선물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청년들이 떠난 소풍의 첫걸음은 ‘나눔’이었고 그 지향점은 ‘평등’이었다. 세 청년의 마음이 밀알이 되어 지도 그리기에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당연히 지도에 담기는 내용도 풍성해졌다. 대중교통을 타고 맛집을 찾아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문화생활도 하는 일상을 자유롭게 누릴 권리가 장애로 인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된 결과다.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장벽 너머의 상황에 대한 관심이 필수적이다. 청년들은 장애가 쌓아올린 사회적 장벽을 체감하기 위해 스스로 휠체어에 몸을 싣고 안대를 썼다. 한 청년은 “장애인이 가기 쉬운 문화시설과 식당들이 하나씩 지도에 표시될 때마다 길 위의 콜럼버스가 된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게 곧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서 희망이 움트고 있음을 느꼈다.

세상이 만든 불공평함에 분노하고 비판하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분노와 비판만으론 ‘불공평함’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를 안타까워하고 선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이들이 마음을 모을 때 비로소 저울의 반대편에 ‘평행’이란 추를 올릴 수 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