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지금, 미술] 여성의 색, 여성의 공간… ‘핑크룸’에 갇힌 주부들을 선동하다

국민일보

[손영옥의 지금, 미술] 여성의 색, 여성의 공간… ‘핑크룸’에 갇힌 주부들을 선동하다

⑩ 윤석남과 핑크룸

입력 2018-10-10 04:03
  • 국민일보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기사사진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14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윤석남’전에 나온 설치 작품 ‘핑크룸 V’. 묘한 불안감이 감도는 형광빛 핑크에서 가족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중년 여성의 허기가 느껴진다. 김지훈 기자

기사사진

자화상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윤석남 작가. 김지훈 기자
이전사진 다음사진
1 2
A는 예뻤다. 게다가 의사의 딸이었으니 귀티 나는 차림새는 1980년대 후반 내가 다니던 대학 캠퍼스에서 단연 돋보였다. 졸업 후 A가 의사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풍문에 들었다. 얼마 전 출장을 갔다 지방 소도시에서 ‘의사 사모님’으로 사는 A를 만났다.

안온한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 셋을 키우며 아내로, 엄마로 사는 행복에 겨워할 거라는 선입견은 와장창 깨졌다. 물론 귀부인 같은 태도, 우아한 미소, 커피 잔을 기울이는 세련된 손끝에서 불행의 그림자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수다를 통해 전업주부로만 알았던 A의 삶에도 자아를 찾아 부글부글 끓던 시간들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 A에게는 그것이 클래식 기타였는데, 마흔에 취미로 시작해 학점은행제를 통해 전공까지 했고, 학원을 열어 남들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클래식 기타가 네겐 뭐냐”는 질문에 “가족 다음으로 소중한 것”이라고 답하던 A로 인해 또 다른 전업주부 친구 B가 생각났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줄도 모르고 “그래, 회사 다니며 자아실현은 잘하고 있냐”고 묻던 B에게 섭섭했던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니, 자아를 향한 욕망은 꿈틀거리나 사정은 녹록지 않고, 심지어 ‘맘충’으로 평가절하되는 현실 탓에 무심코 뱉어졌을 그 문장이 안쓰러워져 쓰다듬어주고 싶어졌다.

‘국내 페미니즘 미술의 대모’로 불리는 윤석남(79) 작가의 ‘핑크룸 V’는 ‘맘충’이라 불리는 한국 전업주부의 내면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에서 볼 수 있다. 1개 층을 전부 분홍색으로 채운 설치 작품은 벽도 바닥도 핑크다. 맨 끝에는 핑크색 3인용 소파가 놓여 있다. 귀부인처럼 우아한 로코코풍이다. 그런데 소파 한 귀퉁이에는 버려진 자개농과 나무로 만든 여인 조각상이 불행한 표정의 중년 여인처럼 비스듬히 앉아 있다. 그러고 보면 그냥 핑크가 아닌 형광색 핑크에서 오는 불안한 공기가 떠돈다. 바닥에 깔린 것도 러그가 아닌 핑크 구슬이다. 그 위에선 누구라도 위태위태해진다.

작가는 “일부러 불안한 핑크색을 썼다. 40대 시절의 내 모습을 은유하는 공간이다. 사업하는 남편을 만나 중산층 주부로 살며 밥 먹을 고민은 안 해도 됐는데, 내가 왜 불안하지, 왜 살아 있다는 느낌이 오지 않지, 자문하며 보냈던 시간들”이라고 말했다.

핑크는 여성의 색이다. 그렇게 사회로부터 주입된 색상을 사용해 방을 꾸밈으로써 여성의 활동 공간을 ‘방 안’으로 한정시키려 했던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항거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또한 자유롭고 싶은 욕구와 엄마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갈등하는 불안한 내면의 아우성이기도 하다.

작가는 실천을 통해 불안을 이겨냈다. 직장생활을 했으나 결혼하면 사표를 쓰는 게 당연했던 1980년대,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딸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던 그는 불혹의 나이에 붓을 들었다. 화실에서 취미로 꽃 그림을 배우는 건 거부했다. 대신 독학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드로잉했다. ‘한량처럼 살던’ 아버지(영화감독 윤백남)가 돌아가신 뒤 39세에 홀로돼 6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2년의 결과물을 모아 1982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도 계속 그릴 거냐?”(남편)

“난 화가로 죽을 테야.”(윤석남)

“그럼, 유학을 가. 그 명함으론 한국에서 버틸 수 없어.”(남편)

작가는 대학 영문과 중퇴였으니 말하자면 고졸 학력이었다. 남편의 주선 덕분에 1983년 혼자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1년 공부하며 뉴욕 화단에서 활발하게 일어나던 페미니즘 미술,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설치 미술의 세례를 받았다. 평면 작업에 한계를 느끼던 작가는 “작품이 벽에서 이렇게 튀어나올 수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그때 얻었다. 귀국 후 빨래판, 의자, 장롱 같은 버려진 나무를 주워서 자르고 이어붙이고 색칠을 해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처음엔 어머니를, 그러다가 이매창, 허난설헌 등 사회적 제약을 뛰어넘은 역사 속 여성들을 나뭇조각으로 표현했다. 일련의 작업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제 한국 페미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전시에는 자화상이 여러 점 나왔다. 입체 작업을 하던 그가 다시 평면 작업으로 돌아온 것이다. 2011년 전시에서 본 조선 후기 선비화가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이 준 충격이 컸다. 올이 살아있는 덥수룩한 수염, 꽉 다문 입, 매서운 눈매의 이 자화상을 두고 어떤 문인은 “6척도 안 되는 몸으로 천하를 뛰어넘으려는 의지가 있다”고 격찬한 바 있다.

작가는 윤두서를 오마주하듯 한지에 먹으로 자화상을 그렸다. 긴 생을 살아오며 둥글둥글해지기 마련인 노인 특유의 인자한 미소는 그림 속에 없다. “다시 태어나면 가난하게 살아도 독신으로 살고 싶다”는 팔순의 그녀다.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보다 더 강렬해 보이는 표정은 ‘딸들아, 핑크룸에서 뛰쳐나오라’고 부추기는 듯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많이 본 기사

포토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