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통역 소통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통역 소통

입력 2018-10-0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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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수업시간 내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에 지적을 했다. 그랬더니 옆의 학생이 대신 설명을 해준다. 애플리케이션으로 교재를 번역하며 읽는 중이라고. 요즘 대학엔 외국인 유학생이 많다. 그런데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수업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막는 벽은 수없이 많다. 나이 성별 성격 종교 신념 등. 그중 가장 높은 것이 언어의 벽일 것이다. 그래서 통역을 한다. 통역이란 소통의 문(通譯)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벽(痛譯)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우리는 통역 없는 정상회담을 목격했다. 보통 정상회담에는 통역이 끼는데 남북 정상회담에선 통역이 없었다. 그러니 같은 시간에 배나 많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은 여러 단계의 번역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러니 표현상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며 성경의 개정을 거부한다. 새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도 마찬가지다.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태어나서 처음 접한 성경이라서? 이미 다 외워놨는데 바꾸기 싫어서? 바꾸는 과정에서 자신이 소외돼서?

우리가 쓰는 개역성경은 80년 또는 100년 전 언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어투나 한자어가 많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통역이 필요하다. 필자는 새번역 성경을 선호한다. 원어의 뜻을 우리 어법에 맞게 표현한 것 같아서다. 두 성경은 명령문 표현이 서로 다르다.

가령 사도 바울의 명령어를 개역성경에서는 ‘∼하라’로 표현하는데 새번역 성경에서는 ‘하십시오’로 한다. 새번역 성경은 어려운 한자어도 현대어로 대폭 바꿨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들이 점잖지 못하다거나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나이 많은 목회자나 교인들로부터 거부당하고 말았다. ‘강단용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하는데 과연 성경이 강단용일까. 일찌감치 새번역 성경을 받아들였다면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말과 글은 민족의 혼이라고 한다. 민족이란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해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집단’이라고 표준국어사전은 정의한다. 통역이 필요 없는 소통 공동체가 민족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에게 우리말뿐 아니라 우리글도 주셨다. 특별한 은총이고 선물이다.

말과 글은 복음의 통로다. 그러므로 교회는 공동체의 어문 규정을 누구보다 잘 지켜야 한다. 그래야 소통이 쉬워지고 전도도 쉬워진다. 그럼에도 요즘 우리나라 교회는 바깥 사회가 이해하기 어려운 ‘교회 사투리’를 자꾸 만들어 비신자들과 소통의 벽을 높이려 한다. ‘주일은 쉽니다’란 표현을 사용하는 곳이 있는데 비신자들에게 주일은 암호에 가까운 말이다. 그들과 소통하려면 그들의 언어인 일요일이라 해야 옳다. ‘특새’ ‘사역’ ‘위임목사’ 같은 용어도 통역을 필요로 한다.

‘아무개 형제(兄弟)님’ ‘죽으셨다’ ‘세례요한’ ‘교사 선생님’ ‘저희 나라’ ‘사모(師母)’ ‘요한복음 ∼절로 ∼절까지’처럼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은 관용어가 돼버렸다. ‘영구(靈柩)’ ‘명복(冥福)’ ‘축복(祝福)’ ‘성전(聖殿)’처럼 교리에 맞지 않는 말도 많이 쓴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들도 버젓이 쓴다.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이집트’나 ‘페르시아’인데 성경에서는 여전히 ‘애굽’이나 ‘바사’라고 한다. 이런 고유명사를 속히 일치시켜야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비신자들도 성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소통하시기 위해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의 언어와 문화 속에 오셨다. 이것이 성육신(成肉身) 소통이다. 소통을 잘하려면 먼저 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어쩌다 교회가 ‘세습한’ ‘세습하는’이라는 단어를 놓고 재판까지 하는 창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회도 KBS처럼 ‘바른 말 고운 말’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좋겠다. 통역이 필요 없게!

이의용(국민대 교수·생활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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