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보수정치, 프레임에서도 완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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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보수정치, 프레임에서도 완패하고 있다

입력 2018-10-1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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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사가 칼 휘두른다고 인적 청산 될까
잠깐 눈길만 끄는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 많아
진보의 프레임에 갇힌 보수, 비루함에서 벗어나려면
프레임 재구성해 가치 있는 언어로 말해야


자유한국당에 조만간 피바람이 불 모양이다.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외부위원인 전원책 변호사는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당협위원장 교체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의 일성은 인적 청산이었다. 드라마든 수사든 정치든 칼잡이의 등장과 이어 벌어질 칼춤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당분간 한국당의 관심도는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그리 길지 않은 이벤트성 단기 흥행으로 끝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혁신이라는 명분은 좋은데 현실이 따라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우선 외부 몇몇 사람이 전권을 가졌다고 인적 청산이 된다고 보는 건 순진하다. 숱한 정치적 사례가 그렇다. 칼자루를 쥔 이들도 속으로는 알 것이다. 일부 외부위원들은 방송에서 정치 평론을 해봤다. 지금도 만담 방식의 평론을 계속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인적 청산? 그거 쉽지 않습니다. 그 동네가 얼마나 노회하고 동물적 감각을 지닌 곳인데 자기 목 친다는데 가만히 있겠습니까? 보수 궤멸에 책임지는 이가 하나도 없다고 여기저기서 공격해대니 일단 지르는 거예요. 절대 성공 못합니다. 본인들도 잘 알 겁니다.”

당협위원장 자리는 총선 공천과 직결된다. 조강특위나 비상대책위의 권한도 시비 걸 소지가 많은 데다 총선을 책임질 다음 대표가 이번 결과를 뒤집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아무리 안전장치를 해놔도 선거가 다가오면 압승이니 전략 공천이니 하는 이런저런 논리로 단번에 뒤집는 게 정치판이다. 그러니 나중에 보면 ‘쇼! 쇼! 쇼!’로 끝나버릴 공산이 크다.

보수정치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단기 흥행으로 잠시 관심을 끄는 쇼쇼쇼가 아니다.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보수정치는 현재 진보진영에 프레임에서 완패하고 있다. 진보정권은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동북아의 지정학적 변화와 이를 계기로 한 경제위기 탈출 같은 미래를 애기하는데, 보수정치는 진보진영이 설정한 프레임 속에서 어깃장을 놓는 게 고작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북·미 거래를 성사시키면서 한반도 미래를 말하는데, ‘위장평화쇼’를 얘기하는 수준이니 과거 지향적이다. 상대방의 프레임에 갇힌 꼴이다.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정치 프레임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일깨워준 교과서다. 그는 상대방의 프레임 속에서, 상대방의 언어로 얘기하면, 상대방의 프레임이 작동한다고 했다. 거칠게 표현하면 상대방에 놀아난다는 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프레임을 재구성해 대응하고, 가치의 차원에서 사고하고 발언하라고 촉구했다. 지금 한국의 보수정치나 한국당은, 진보의 프레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 이유를 보수정치가 알고는 있다. 지난 8일 한국당 비대위 산하의 ‘좌표와 가치 재정립을 위한 소위원회’는 두 달간의 활동 결과로 ‘보수정치의 새로운 좌표와 가치’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수정치의 처지를 ‘한 줌 남짓의 지지 세력에 기대어 기득권을 지키는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규정하고, ‘시대적 소명을 다한 것들을 하루빨리 버리고 국민 요구와 시대 요청에 부합하는 새것들을 채워 넣어야 한다’고 했다. 보수주의의 본질은 높은 도덕성과 개혁성이라고도 정의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인데, 좀 안쓰럽다. 보수정치에서는 이제까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탄핵 1년이 넘은 지금에도 ‘한국당, 어디로 갈 것인가’의 주제로 이런 말이 나오는 건 블랙코미디다. 보수정치는 한 줌 남짓의 지지 세력만 보고, 쪼그라든 기득권을 유지하는 게 그나마 낫다는 프레임을 갖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도저히 재구성할 실력이 없는 것인가.

레이코프에 따르면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게 사회적 변화 그 자체다.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다르게 말해야 한다. 과거와 똑같은 말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정치를 하는 건 변화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광복 이후 보수정치가 만끽해온 반공과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치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 인적 청산은 수단일 뿐이다. 보수정치가 프레임을 바꾸지 않으면, 진보진영의 프레임 속에서 계속 놀고 있으면 ‘보수정치가 국정의 한 축으로서의 역할을 잃었다’는 소위원회의 평가는 현실로 확실히 굳어진다. 이것은 보수진영의 품격과도 관련된 것이다. 보수정치가 더 이상 비루하고 가볍게 흘러서는 안 된다.

보수정치가 허접스러우면 여당 대표가 북한에 가서 국가보안법 폐기를 주장하고, 죽을 때까지 정권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는 오만함을 보여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 그 비판에 무게마저 없기 때문이다. 보수정치를 구할 이는 정말 없는가.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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