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청년]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예배 위해 음악으로 봉사해요”

국민일보

[예수청년]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예배 위해 음악으로 봉사해요”

독일의 작센주 유일한 한국인 칸토어… 교회음악 본고장서 인정받는 정요한씨

입력 2018-10-12 17:58 수정 2018-10-15 10:26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기사사진

독일 작센주에서 유일한 한국인 칸토어 정요한씨가 성안드레아스교회 파이프오르간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씨가 존경하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오르간 악보가 악보 받침대에 놓여 있다. 정요한씨 제공

기사사진

독일 작센주 캠리츠에 위치한 성안드레아스교회에서 칸토어로 일하고 있는 정요한씨가 교회 성도들과 함께 주일 예배를 위한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중부독일방송 화면 캡처
이전사진 다음사진
1 2
┃독일 작센주의 유일한 한국인 칸토어… 교회음악 본고장서 인정받는 정요한씨

지난 6월 30일 중부독일방송(MDR)의 ‘글라웁뷔르디히’란 프로그램에 독일 작센주 켐니츠 성안드레아스교회의 칸토어(Kantor·교회음악감독)로 일하는 정요한(32)씨가 출연했다. 글라웁뷔르디히는 독일어로 ‘신뢰할 수 있는’이란 뜻으로 MDR은 독일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외국인들을 매주 한 명씩 섭외해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간극장’과 비슷한 포맷으로 한국인이 출연한 건 정씨가 처음이다.

바흐를 좇아 낯선 독일로

정씨가 독일로 간 건 2011년이다. 부산 영도구 고신대에서 교회음악과 오르간 학사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좇아 독일 작센주의 라이프치히로 향했다. 음악의 도시라 불리는 라이프치히는 바흐가 예술가로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친 곳이다. “파이프오르간이 많이 있는 곳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는 정씨에게 딱 맞는 곳이었다. 바흐가 칸토어로 일했던 토마스교회 역시 라이프치히에 있다.

정씨는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오르간 석사 과정을 밟았다. 라이프치히 국립음대는 바흐의 영향을 받은 음악가 멘델스존이 설립한 곳으로 초대 학장인 그의 이름을 따 멘델스존 음악학교로도 불린다. 정씨는 석사 학위 취득 후 브레멘 국립음대에서 ‘고(古)음악’을 공부하고 다시 라이프치히로 돌아왔다.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전문연주자 과정인 ‘마이스터 클래스’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난 6월 졸업 연주와 함께 최고 점수로 해당 과정을 마쳤다.

교회 반주자에서 칸토어가 되기까지

정씨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독일 작센주에서 외국인 칸토어는 저밖에 없으니까 저에 대해 궁금했던 것 같다”며 자신이 MDR에 섭외된 이유를 덤덤히 밝혔다. 그는 “오래 전부터 연락이 왔다”며 “독일인들의 영역인 칸토어를 한국인이 하고 있고 제가 중간 중간 연주회도 하니까 관심이 생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독일 유학 5년 만인 2016년 켐니츠 옆 작은 도시에서 칸토어로 일을 시작했다. 지금의 성안드레아스교회에선 지난해부터 일을 하고 있다. 1976년부터 성안드레아스교회에서 칸토어로 일했던 울프강 슈베르트(68)는 당시 31세였던 젊은 한국인 청년을 후계자로 삼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세대와 국적은 달랐지만 바흐에 대한 사랑, 교회음악과 오르간에 대한 열정이 정씨에게서 보였다고 한다. 정씨는 슈베르트에 이어 이곳에서 교회음악과 관련된 모든 걸 담당하고 있다. 두 개의 합창단을 지휘하는 동시에 어린이합창단을 만들어 키워나가고 있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전혀 없는 칸토어 자리에 정씨가 지원한 이유는 뭘까. 바흐의 영향도 있었지만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컸다고 한다. 목회자 자녀인 정씨는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주하며 반주 봉사를 했다. 유학 초기에는 한인교회에서 성가대 등으로 봉사를 이어갔다. 독일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한인교회 봉사는 하지 못하게 됐지만 그는 독일교회에서도 봉사를 하고 싶었다.

정씨는 “칸토어로 일하기 전에도 교회에서 (반주)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그러다 독일교회를 더 깊이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교회 안에서 교회 음악이 어떻게 이뤄져 나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제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님 보시기에 더 좋게

정씨는 칸토어라는 직업이 단순한 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그는 오르간을 연주하고 합창단을 지휘하는 일이 자신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정씨는 “나는 오르가니스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신앙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똑같다”고 말했다. MDR은 이런 정씨의 열정에 성안드레아스교회 성도들이 큰 감명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칸토어가 됐음에도 계속 노력하는 모습이 진실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정씨는 칸토어 일을 하면서 드레스덴 교회음악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칸토어는 자격 조건만 충족되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자격 조건을 갖추는 게 만만치 않다고 한다. 악기 하나만 다뤄서는 지원이 아예 불가능하다. 독일어는 기본이다. 정씨는 “한국에선 오르간이면 오르간, 지휘면 지휘 이렇게 하나만 하는데 칸토어는 이 모든 걸 다 해야 한다. 작곡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르간 연주, 합창단 리허설 등 몇 번에 걸친 실기 면접도 봐야 한다. 정씨도 이 과정을 거쳐 칸토어가 됐다.

독일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지원 가능한 교회가 나뉜다. 정씨가 속한 그룹은 B그룹으로 교회음악학교 학사를 졸업한 사람만이 지원할 수 있다. 교회음악학교 석사를 졸업하면 교회음악에 대한 전문성을 더 많이 요구하는 A그룹 교회에 지원할 수 있다. 정씨는 “제가 잘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이 많기 때문에 드레스덴에서 전문성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이 모든 일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게’다. 그가 생각하는 음악은 신앙 속에서 사람과 조화되는 것이다. 정씨는 “교회음악가로서 오르간이나 합창에 힘써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예배를 드리는데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회가 되면 한국의 교회음악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그는 “한국에선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면 목회자로서 일할 수 있지만 교회음악가를 위한 시스템은 전혀 없다. 교회음악학과를 졸업해도 생계를 위해 레슨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당장 뭘 할 수는 없겠지만 더 성장해서 한국의 교회음악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회음악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총감독’

독일의 유서 깊은 직업 ‘칸토어’는

칸토어란 교회음악가를 가리킨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음악과 관련된 모든 일을 맡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예배 오르간 반주, 성가대 합창단 지휘를 한다. 그 외 각종 연주회들도 기획하고 연주한다.

한국에는 칸토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생소할지 모르나 독일에서 칸토어는 유서 깊은 직업 중 하나다. 독일 작센주 유일의 한국인 칸토어 정요한씨가 롤 모델로 삼는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역시 칸토어였다.

바흐는 38세 되던 해인 1723년 6월 1일 라이프치히의 토마스교회 칸토어로 부임했다. 그는 65세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이곳에서 칸토어로 일하면서 매주 대예배를 위해 칸타타를, 성금요일을 위해 수난곡을 작곡·연주했다. 그가 이 시기 작곡한 300여곡의 칸타타, 수난곡, 오라토리오 등은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 등 후대의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독일은 교회가 정부 소속으로 돼 있기 때문에 칸토어는 국가에서 일하는 공무원으로 분류된다. 각 교회는 규모와 지역에 따라 일반적으로 A·B·C 그룹으로 차등 분류되는데 바흐가 칸토어로 있던 토마스교회는 A그룹에 해당한다. 정씨가 일하는 성 안드레아스 교회는 B그룹이다. 오르간 연주와 칸토어 일을 동시에 하는 정씨처럼 보통 하나의 교회에 한명의 칸토어가 있지만 규모가 큰 대성당 같은 곳은 오르가니스트와 칸토어를 따로 두기도한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