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귀향] 돌아갈 집이 있다, 하나님 마음

국민일보

[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귀향] 돌아갈 집이 있다, 하나님 마음

입력 2018-10-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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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앞에 세워진 청동 조각상 ‘성 프란체스코의 귀환’. 세속의 꿈을 버리고 청빈의 삶을 살았던 성 프란체스코가 하나님의 마음을 향해 가고 있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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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데 리베라의 1639년 작품 ‘성 프란체스코의 탈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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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인에게 망토를 주는 성 프란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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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매일, 매시간 떠나고 돌아오길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힘겨운 시간을 만나기도 하지만 주님은 실패한 자녀를 비웃지 않으신다. 주님은 ‘집으로 돌아옴’의 조건으로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사로잡힌 채 잘못을 고백하는 걸 요구하지도 않으신다. 주님은 한없는 관용과 용서로 자녀를 안타깝게 떠나보냈다가 돌아오기만 하면 반가이 집안으로 맞아들이신다. 그리스도인들에겐 ‘돌아갈 집’이 있어야 한다.

한 병사가 힘이 없는 모습으로 말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병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떨어질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몸의 근육이 실낱처럼 흩어진 듯 병사의 두 어깨가 축 처져있다. 병사의 깊은 한숨 소리를 듣기라도 한 걸까. 그를 태운 말마저 고개를 숙였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앞에 세워진 청동 조각상 ‘성 프란체스코의 귀환’ 모습이다. 청년 시절 기사가 되려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온 프란체스코의 상심한 심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동상 앞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듣게 될 것이다.”

이탈리아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부유한 상인 가정 출신인 프란체스코는 1202년 고향과 앙숙이었던 페루자(Perugia)와의 전쟁에 나섰다가 포로가 돼 1년간 옥살이를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아 귀향하던 그날은 생애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개 숙인 프란체스코의 모습은 이제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뒤로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추구하겠다는 겸손한 마음을 보여준다. 기사의 꿈을 접고 주님의 뜻에 순응하기로 결단한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다

이탈리아 움브리아 수바시오(Subasio) 산기슭에 평화가 흐르는 중세도시 아시시가 있다. 성 프란체스코(St Francis, 1182∼1226)가 태어나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가난한 자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살았던 이곳을 최근 방문했다.

수많은 아치로 이뤄진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앞 광장의 독특한 회랑을 지나 정교한 고딕 양식의 문을 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 프란체스코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은 다른 성당들과는 달리 지하 1층과 지상 2층 구조이다. 성당 입구에 복장 착용 불량자 출입금지와 촬영금지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스피커에서는 연신 ‘silenzio’(침묵) 하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하 계단을 따라 성인의 유해가 있는 안식처를 어둠과 침묵 속에 둘러봤다. 누더기처럼 기워진 회색빛 수도복, 양모 신발, 손수건 등을 보며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실천했던 ‘가난의 영성’을 생각했다. 어두운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오자 바실리카 양식의 작은 창문들과 높은 천장, 벽에 달린 스테인드글라스로 형형색색의 빛이 내려왔다. 마치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천국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 듯했다.

1층은 전체가 프레스코화로 덮여 있다. 치마부에가 그린 ‘왕좌에 앉은 아이를 안은 처녀’, 조토의 ‘십자가’, 피에트로 로렌체티와 그의 조수들이 그린 그림들, 시모네 마르티니의 ‘마르틴 예배당’ 등이 있다. 2층 성당의 거대한 동쪽 면은 흰색 석회암으로 돼 있고, 중앙에 커다란 장미창(薔薇窓)이 있다. 내부의 벽면은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28면으로 나누어 그린 조토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내면으로부터 새로워져 오직 주님의 뜻을 실현했던 프란체스코를 기억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집으로 돌아간다’의 영적 의미를 생각해본다. 미국의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라는 자아상을 단단히 붙들고 고향을 향해 걷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저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집은 결국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집에 머문다’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그분의 마음속에 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삶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선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일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여정에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참을성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집을 떠나는 순간 그 자리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 역시 죄책감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는 꼭 실패해서 반드시 내게 손을 벌릴 줄 알고 있었다’고 질책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을 연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건 탕자의 비유에 나타난 위대한 창조주의 모습이 아닙니다. 주님은 제 힘으로 무얼 해보려다 쓰러진 자식을 비웃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사로잡힌 채 잘못을 고백하는 걸 귀향의 조건으로 내걸지 않습니다.”(헨리 나우웬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중에서)

젊은 시절 한때 향락에 젖어 살았던 성 프란체스코는 회심한 후 한센병 환자 등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살았다. 40일간의 금식기도 끝에 양손과 양발에 예수님의 못 자국이 나타나는 스티그마타(성흔·聖痕)가 생기기도 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과 절대 청빈을 중요시 했다. 그는 겸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모욕하는 모든 사람에게 겸손하게 대하시오.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중상과 불의를 끼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시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하늘에서 받을 보답이 클 것입니다!”

청빈 순종 평화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에서 나오니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처럼 고운 연둣빛 잔디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13세기까지 죄수들의 교수형이 집행돼 ‘지옥의 언덕'으로 불렸던 곳이다. 1226년 10월 3일 죽음을 맞이한 성 프란체스코는 이 언덕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 언덕과 닮았다는 이유로 이곳에 묻히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로부터 2년 후 프란체스코는 성인으로 시성 됐고 그가 묻힌 자리에 아름다운 성당이 세워진 것이다. 이 언덕은 이제 처형되는 죄인의 눈물은 없고 용서받는 죄인의 눈물만 있는 평화의 언덕이 됐다. 이곳에 붉은 잣나무로 만들어진 타우(T)형 십자가와 청동조각상 ‘성 프란체스코의 귀환’이 서 있다.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 위에서 자신을 버릴 수 있었던 희생과 용기가 느껴졌다.

세속의 꿈을 버리고 가난과 청빈, 순종, 평화의 삶을 살았던 성 프란체스코가 한국교회에 주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가난은 곧 그의 이름이었다. 그의 삶과 영성을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표징이기도 했다. 그는 수도복 한 벌과 띠와 속옷으로 만족하고 더 가지기를 원치 않았다. 그가 추구하는 가난은 세상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에 대한 사랑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한국교회 안에 스며든 양적 성장, 물질주의적 가치, 기복주의적 기도, 세속화에서 벗어나 성 프란체스코가 따르고자 했던 ‘그리스도인다움’을 회복해야 할 때이다. 그는 평화의 기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쓰소서/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그릇됨이 있는 곳에 참됨을/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어둠에 빛을/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우리는 줌으로써 받고/나를 잊음으로써 나를 찾으며/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성 프란체스코의 ‘평화의 기도’)

▒ 귀향에 하나 더
그림에 담은 ‘가난의 영성’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에 그려진 조토(Giotto, 1267∼1337)의 28점 연작 프레스코화는 중세의 가장 뛰어난 신학자 중 한 명인 성 보나벤투라가 집필한 ‘성 프란체스코 대전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의 일화가 28개의 장면으로 나뉘어 그려져 있다.

조토는 평면적이고 인물의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중세시대 그림과 달리 사람의 표정을 세밀하게 그렸다. 아시시 시장에서의 경배, 망토를 벗어주는 성 프란체스코, 왕궁의 꿈,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의 기도 등의 그림을 통해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걸인에게 망토를 주는 성 프란체스코’(그림)는 ‘가난의 영성’을 느끼게 한다. 어느 길에서 추위에 떠는 걸인과 마주친 그가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어 건네주는 장면이다. 성인이 건네주는 오렌지색 망토의 넉넉하고 따뜻한 사랑의 온기가 걸인에게로 전해진다.

성 프란체스코는 허물어져 가는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할 때 “내 집이 무너지고 있다. 가서 내 교회를 고쳐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이 길로 세속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교회가 잃어버렸던 ‘가난’의 영성을 주창하고 구현했다.

아시시(이탈리아)=글·사진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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