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 풀숲·뱀 운동장에 일군 ‘작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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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 풀숲·뱀 운동장에 일군 ‘작은 기적’

미얀마 양곤 열악한 학교 환경 개선 위해 선교비 보낸 담양 고서교회 이재승 집사

입력 2018-10-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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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양곤 빈민가 학교 운동장 한구석에 자리한 운동장 복원 표지석을 가운데 두고 조명택(왼쪽) 선교사와 이 학교 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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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로연합회가 빈민가 일대에 수십개의 우물펌프를 설치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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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비에도 습지로 변해 버리는 학교 운동장. 이재승 집사 가족의 선교비로 복원하기 전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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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고서교회 이재승 집사(왼쪽)와 이 교회 곽금철 목사. 이 집사는 “기회가 되면 자녀들과 양곤 봉사활동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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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중순 교회 선교여행차 떠났던 태국 방콕과 미얀마 양곤. 그 일정 가운데 양곤의 한국식당 인근 한 학교에 들렀다가 한글로 된 표지석 하나를 발견했다. 물론 선교팀 스태프로 참여한 현지 조명택 선교사의 안내로 이뤄진 방문이었다.

‘운동장 복원. 고서교회 이재승 집사가족 이시온 이지온 이희온 2018년 8월 30일.’

양곤 흘라윙따야 학교 교정 표지석 내용이다.

이들 가족은 그 멀리 미얀마 양곤강가 한 학교 운동장을 복원하라고 선교비를 보냈다. 그 선교비가 이 학교 학생 4000여명을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놀게 한 것이다.

지난 주말 태풍 콩레이를 뚫고 전남 담양 고서교회를 찾았다. ‘작은 기적’의 주인공 가족 이재승(48) 집사 등을 만났다.

흘라윙따야 학교는 우리로 치자면 초·중등학교가 한 캠퍼스를 이룬다. 2부제 수업이 이뤄지고 있고, 한 반에 100여명씩 공부한다. 1960∼70년대 서울 변두리 학교의 2부제 수업을 보는 듯했다.

미얀마는 2000년대 들어 개방정책을 실시하면서 경제·문화 수도인 양곤에 이농인구가 몰려 몸살을 앓고 있다. 도시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구만 늘다 보니 도시는 교통지옥이었다. 인구 500여만명의 도시는 더 이상 집 지을 곳이 없다. 버마해와 닿는 양곤강과 그 지류 하천 부지에는 몰려든 이농자들이 무허가 판자촌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국유 도로변에도 야자수 잎과 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집들이 즐비하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유일한 희망은 학교. 배움은 그들이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하는 사다리이다. 하지만 과밀학급 학교는 교사와 시설 부족 등으로 열악하기 짝이 없다. 또 양곤 도시 자체가 저지대라 우기만 되면 교실을 제외한 나머지 시설이 모두 습지로 변한다. 운동장은 금세 풀이 자라고 뱀들이 산다.

그렇다고 식수가 풍부한 것도 아니다. 석회석을 함유한 물성분과 쓰레기 침투 등으로 오염된 물 문제는 학교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

이 집사 가족은 운동장과 우물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주었다. 하지만 미얀마를 방문한 적 없는 그들 가족은 자신들의 선교비가 ‘작은 기적’을 이뤘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목사님께서 식수가 부족해 질병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설교하셨어요. 그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한데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마음만 가득하더라고요. ‘주님, 굶고 배우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없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합니다’라고 중보했어요.”

지난해 고서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 노회가 장로들 중심으로 미얀마 양곤 빈민가에 우물 파주기 선교후원금을 모았다. 이때 이 집사는 자녀들과 논의했고 500만원이라는 큰 금액을 선교비로 내놨다.

고서교회. 이름만으로 알 수 없는 교회였다. 검색 끝에 전남 담양군 고서면에 위치한 면 단위 시골교회임을 알 수 있었다. 고서교회 곽금철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집사 가족을 만나보고 싶다고 전했다. 이 집사는 부끄럽다며 거절했으나 ‘선은 또 선을 낳는다’며 설득했다. 그렇게 이 집사를 만날 수 있었다.

곽 목사는 “혼자서 2남1녀를 키우는 집사님이 양곤 학교 실정을 듣고 선뜻 큰돈의 선교비를 내놓겠다고 하실 때 많이 놀랐다. 예수께선 언제 어느 곳이든, 어떤 형태로든 제자를 보내시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옥합을 깨뜨렸던 이 집사의 세 자녀는 ‘싱글 대디’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 이혼한 지 10년 넘는 이 집사는 교회 식구들의 재혼 권유에도 “아직 애들이 어려서…”라며 에둘러 거절하곤 했다.

이제 큰아들은 대학생, 둘째 아들은 고등학생, 막내딸은 중학생이 됐다. 다들 고서교회 주일학교를 거치며 성장한 자녀들이다.

“막내딸이 초등학교 졸업식 때 ‘아빠, 이렇게 우리를 길러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사랑해요, 아빠’ 하면서 울더라고요. 나 때문에 철이 일찍 들었나 싶어 마음이 아팠죠. 그런 아이들이 용돈 절약해 선교비에 보탠다고 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이 집사는 전남 순천 직장과 고서 집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환경업체에 근무하는 근근한 직장인이다. “형편 좋아진 다음 이웃을 돕겠다는 생각으로는 평생 예수의 제자가 못될 것 같았습니다. 복음 전하는 데 때가 없듯이 이웃을 돕는 일도 마찬가지라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이 집사는 “기회가 닿으면 아이들과 미얀마 양곤에 가서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며 “내가 많이 부족하긴 하나 크리스천으로 성실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것이 안 믿는 이들에게 전도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한편 선교팀이 방문했을 때 흘라윙따야 교장은 직접 운동장과 우물을 보여주며 이 집사 가족에게 감사를 전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분들이지만 여기 학생들이 한국교회의 어느 교인과 또래 친구들이 우물과 운동장을 마련해 준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명택 선교사와 함께 운동장 표지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꼭 그 가족에게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양곤 빈민가 감싼 교회의 따뜻한 손길
전국장로연합회 임원·회원, 의료·미용봉사·우물 파주기


비전트립 기간 중 전국장로연합회 임원 및 회원 40여명이 양곤 빈민가를 방문해 선교와 봉사의 지경을 넓혀 가고 있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통합·백석대신·고신 측 장로 등으로 구성된 봉사팀이었다. 이들은 첫날 빈민촌 임마누엘교회를 방문해 예배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의료봉사, 미용봉사, 우물 파주기, 골목길 청소 등 쉴 틈 없는 일정을 진행했다.

흘라윙따야 제4고교에는 지하수 개발, 9고교에는 정수기 40대 기증, 13고교에는 노트북 17대를 기증했다. 강의창 장로(합동 측 회장) 등 봉사팀 장로 전원은 연합회 명의와 별도로 빈민가 곳곳에 펌프우물을 기증했다. 35만원 정도면 한 개의 우물을 팔 수 있고 그 한 개의 우물은 수백 명의 생명수가 된다.

조명택(66) 선교사는 “한국교회가 미얀마 빈민지역에 파준 펌프우물이 1500여개에 이른다”며 “이외에도 빈민촌 길 시멘트 포장, 지붕 개량, 학교 지하수 개발 등의 사랑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 선교사는 2006년 군 퇴역 후 부임한 합동 측 시니어선교사다.

담양·양곤(미얀마)=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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