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률 72%… 자영업자들 “일자리 있었다면 창업했겠나”

국민일보

폐업률 72%… 자영업자들 “일자리 있었다면 창업했겠나”

백종원 국감 발언으로 본 ‘자영업 팩트체크’

입력 2018-10-1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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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나라는 인구당 식당 수가 너무 많다. 과도하다.” “시장원리에 따라 도태될 수밖에 없는 분들은 도태돼야 한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이사가 지난 12일 국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한 발언들이다. 국회의원들 앞에서 거침없이 쓴소리를 쏟아낸 그의 발언에 ‘시원하다’는 반응이 적잖다. 표현이 직설적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자영업의 현실을 보여줬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백 대표의 발언 중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기준 자영업자는 약 568만명인데 창업자 대비 폐업 비율(폐업률)은 72.2%에 이른다. 매년 100만명 가까운 자영업자가 사업을 포기하고 문을 닫는다. 자영업자가 너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자영업자의 몰락’을 준비되지 않은 개인 탓으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

실제로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자기 가게를 여는 게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알면서도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일말의 희망’을 안고 자영업자가 되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26년 동안 일하던 박모(55)씨는 2011년 명예퇴직한 뒤 직장을 두 번 옮겼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그는 일본 회사에서 5년 정도 영업본부장으로 일했다.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국내 중소기업으로 옮겼으나 경영 악화로 1년 만에 다시 나와야 했다. 그렇게 6년을 보내고 나니 마땅히 갈 만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박씨는 2016년 9월 막다른 골목에서 프랜차이즈 피자집 창업에 뛰어들었다.

4년 동안 일식당 주방장으로 일하던 강모(31)씨는 6개월 전 서울 강동구에 작은 일식 주점을 열었다. 주6일 근무에 새벽 2시까지 일해도 받는 돈은 160만∼200만원이었다. 식당일은 일반 기업처럼 승진체계도 없고 월급이 매년 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강씨는 “일은 내가 다 하는데 돈은 사장이 버는 걸 보고 작아도 내 가게를 차리고 싶었다. 대부분 빚으로 시작해야 했지만 도전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자영업자의 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박씨는 2개월 전 피자집을 내놨다. 매일 아내와 둘이 오전 10시에 나와 밤 12시30분까지 일하는 박씨는 창업 후 2년 동안 이틀밖에 못 쉬었다. 그런데도 임대료, 프랜차이즈 수수료,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고작 월 200만∼300만원이다. 박씨는 “삶의 질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돈도 못 번다. 창업한 걸 후회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 다만 섣불리 뛰어든 것은 아닌지 곱씹는 날이 많아졌다. 강씨는 “임대료를 내고 대출 이자를 빨리 갚으려면 1년 내내 매일 20시간 정도 일해야 한다. 직장에서 월급 받고 명절엔 쉬고 휴가도 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자영업 포화 상태를 만든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50, 60대는 재취업이 어렵고 20, 30대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이들을 자영업자로 몰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 자체가 적다보니 ‘차라리 자영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잖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기업, 중견기업 등에서는 50대가 넘으면 회사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이들이 회사를 떠날 때 손에 들고 있는 게 퇴직금이다. 마땅한 재취업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 이 돈으로 창업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씨나 강씨처럼 막상 자기 가게를 연다 해도 운영을 해 나가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백 대표 지적대로 ‘준비되지 않은’ 자영업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박씨는 2개월을 준비했고, 강씨는 가게 운영 준비보다 대출에 더 신경써야 했다. 전문가들도 백 대표 말처럼 자영업의 낮은 진입장벽을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았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좋은 일자리가 없으니 정부가 자영업 진입장벽을 낮춘 게 문제”라고 말했다.

결국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자영업의 몰락’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을 할 준비가 안 된 사람이 돈을 조금 받더라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수정 손재호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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