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여행-주영기] 웹스터 사전과 고추장

국민일보

[역사 여행-주영기] 웹스터 사전과 고추장

입력 2018-10-20 04:01

기사사진

최근 국내 언론의 외신 보도에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출판사 메리엄-웹스터’가 우리 고추장을 새 단어로 추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영어사전에 한국산 토종 양념의 이름이 실렸다니 지구촌으로 뻗어가는 한국 문화의 위력을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기사 본문에 고추장만큼 눈길을 끄는 단어가 있다. 사전 편찬자 웹스터의 이름이다. 뉴욕시에서 ‘아메리칸 미네르바’라는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던 그가 1843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편찬 작업에 매달렸던 바로 그 사전에 역시 19세기 조선의 대표적 양념의 이름이 실린다니 ‘역사는 참 상상을 뛰어넘는 인연을 맺어주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웹스터 이름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또 있다. 그가 대학 졸업 후 교사, 신문 편집자 생활과 코네티컷주 하원의원 활동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 인생을 쏟아부었던 영어사전 제작의 동기와 37년간의 사전 초판, 2판 제작 과정이 그것이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했던 웹스터는 변호사 개업은 못하고 가난하게 살던 중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재정 지원을 받아 뉴욕에서 연방주의자 (Federalist)들을 옹호하는 신문을 발행한다. 당시 미국은 건국 직후 강력한 중앙정부 체제를 지향하던 연방주의자들과 토머스 제퍼슨과 같이 13개 주의 자치권에 더 방점을 두던 공화파가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시절이었다. 웹스터는 청년시절 연방주의자로, 미국 버전의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중앙정부라는 절대권력의 탄생을 두려워하던 제퍼슨과는 달리 영국에 문화적으로 종속되지 않은 온전한 독립국가로서의 미국을 옹호했다. 그래서 같은 입장의 초대 워싱턴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공화파의 공격을 신문 편집자로서 펜을 통해 방어하는 역할을 수년간 맡았던 것이다.

특이한 것은 연방주의라는 정치적 이상 실현이 사전 만들기의 동기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그는 사전이 영국으로부터 미국이 정신적·정서적으로 분리된 진정한 독립국가가 되기 위한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당시 미국은 1783년 파리조약으로 영국에서의 독립이 공식화된 후 20여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쓰고 말하고 생각하는 인간 삶의 기초를 이루는 영역에서는 영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웹스터는 규칙적이면서도 영국식과는 다른 개혁적인 철자법(예를 들어 centre, colour 대신 center, color로)과 단어들의 쓰임이 아이들로 하여금 영국의 문화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언어가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전제 아래 언어 개혁을 시도한 것이다.

이런 동기가 작용한 사전 출판 작업은 그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는 그다지 빛을 본 건 아닌 듯하다. 그는 아이들의 언어교육에 필요한 스펠링북을 출판해 성과를 거두었지만 삶의 거의 절반을 투자한 사전은 1판이 겨우 2500부 팔리는 등 부진한 성적을 냈다. 사전 편찬을 위해 집을 저당 잡히기도 했던 웹스터는 자신의 2판 사전 부록 수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이틀 후 눈을 감았다. 그러나 175년이 지난 오늘날 그의 사전은 고추장, 비빔밥 등 한국 단어까지 수록하며 그 존재를 확장하고 있다.

주영기 한림대 미디어스쿨 학장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