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지금은 훈풍이 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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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우 칼럼] 지금은 훈풍이 불지만

입력 2018-10-1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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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동의 집착하는 건 6·15, 10·4 공동선언 학습효과 때문
안보엔 여야 없다고 했는데 남북문제만큼은 정권 부침에 따라 온탕 냉탕 오가지 말아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부가 손가락 하트 포즈를 취하며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남측 수행원들과 사진을 찍는다. 가수 에일리는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장을 사이에 두고 포즈를 취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래퍼 지코를 카메라에 담는다. 지난해와 판이하게 달라진 올해 남북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순간들이다.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때도 보지 못한 장면이다.

빛의 속도로 남북관계가 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는 단계까지 접어들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성사되면 대통령 임기 중 한 번 이뤄지기도 어려운 남북 정상의 만남이 한 해 네 번 열리게 된다.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만남이 이뤄질지….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싶다.

죽 쑤는 각종 경제지표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60%대 초반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주요 요인은 남북문제에 있다. 적어도 대화 분위기가 지속되는 동안 북한의 도발은 없을 것이란 공감대가 국민들 사이에 폭넓게 자리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2년 차 문재인정부 성적표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과목이 남북문제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채점은 박하다. 뚜렷한 비핵화 성과 없이 북한에 끌려다닌다고 핏대를 높인다. 남북문제에 관한 한 한국당의 시계는 여전히 이명박·박근혜 시절에 멈춰선 느낌이다. ‘비핵 개방 3000’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고집하며 남북관계의 잃어버린 9년을 만들었던 그때로 되돌아가자는 건 분명 아닐 텐데 비치는 모습은 영락없다.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공산권과 교류의 단초를 연 건 노태우정부다. 북한을 타도의 대상에서 교류와 협력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 역시 노태우정부다. 독일에 동방정책이 있었다면 우리나라엔 북방정책이 있었다. 대중, 대소 수교가 이뤄지면서 ‘중공’은 중국이 됐다.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하고 남북 간 화해 및 불가침, 교류협력을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이끌어낸 것도 이 무렵이다.

이처럼 튼튼한 기초가 밑바탕이 돼서 남북이 분단 이후 최초의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에 합의할 수 있었다. 비록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회담은 불발됐으나 전례가 있었기에 김대중·김정일 회담이 어렵지 않게 성사될 수 있었다고 본다. 김대중·김정일 회담은 노무현·김정일 회담으로 이어져 남북관계는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는 6·15, 10·4 선언을 계승한다고 했다. 그러나 행동은 달랐다. 6·15, 10·4 선언은 무시됐고 금강산관광에 이어 전쟁이 나기 전엔 절대 멈추지 않는다던 개성공단마저 가동이 중단됐다. 그 원인을 북한이 제공한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명박·박근혜정부가 악화된 관계를 개선하려 하지 않고 사실상 방치했다는 점이다. ‘핵을 포기하면 지원하겠다’는 식으로 지금 미국이 나서도 어려운 비핵화를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긴장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동의에 집착하는 이유도 이 같은 학습효과 때문이다. 정치 환경이 바뀌자 한낱 휴지조각으로 전락해버린 6·15, 10·4 선언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법적 효력을 갖도록 만들겠다는 취지일 게다. 정권의 부침에 따라 정책은 수정, 보완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총론이 바뀌는 정책은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 대북정책이 그렇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이나 진보와 보수의 대북정책은 편차가 크다.

독일 통일은 진보의 동방정책을 보수가 그대로 계승했기에 가능했다. 독일도 통일정책을 놓고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심했다. 그러나 브란트가 제시한 동방정책을 계기로 보혁을 아우르는 하나의 통일정책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독일이 먼저 걸었다. 그 길을 두고 다른 길로 가는 것은 멍청이나 하는 짓이다. 시행착오는 겪을 만큼 겪었다. 국민 누구나 공감하고 수긍하는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게 결코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다. 정권마다 바뀌는 대북정책으로는 통일이 멀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대북정책 또한 완전하고 불가역적이어야 한다. 과거 연속성 있는 대북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번번이 진영논리에 매몰돼 소모적인 논쟁만 되풀이했다. 세대와 이념을 아우르는 대북정책이 진작 나왔어야 했다. 적어도 남북문제만큼은 정권의 부침에 따라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남북 간에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나 기존 합의를 준수하고 이행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고 했는데 요즘엔 있는 것 같다.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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