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메이지유신 150년이 의미 가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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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래 칼럼] 메이지유신 150년이 의미 가지려면

입력 2018-10-22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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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전제는 ‘전쟁포기·비무장’을 선포한
일본국헌법 9조를 지켜내려는 노력이다
반면 日 아베 총리는 메이지유신 예찬하면서도
평화헌법 개정 독려하며 오히려 유신 죽이기에 나서


지난 한 주일 동안 야마구치 하기 시모노세키 사가 나가사키 가고시마 등 일본의 서남지역 10개 도시를 다녀왔다. 도쿠가와 막부의 총 300개 번 중 조금 일찍 개명한 곳을 서남웅번(西南雄藩) ‘삿초도히(薩長土肥)’라고 부르는데 그중 시코쿠의 도사(土佐, 현 고치)를 제외한 전 지역을 이번에 취재했다.

사쓰마(薩摩, 현 가고시마), 조슈(長州, 현 야마구치), 히젠사가(肥前佐賀, 현 사가) 등 웅번은 1868년 메이지유신(이하 유신)을 주도했다. 그 지역은 유신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가득했고, 각종 박물관과 관련 견학시설에는 관람객이 넘쳤다. 그런데 우리에게 유신은 뭔가, 아니 무엇이라야 하나.

취재 계기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월 1일 내놓은 ‘연두소감’이었다. 그는 올해가 유신 150주년임을 앞세워 유신 예찬을 쏟아낸 후 현재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숱한 문제들을 당시의 국난과 비슷하다고 전제하고 자신과 더불어 ‘새로운 나라건설’에 매진하자며 국민 결집을 호소했다. 그야말로 역사 미화요, 도발이었다. 유신이 서구열강의 압력 속에서 독립을 지켜냈고 이후 급격한 근대화·산업화에 성공한 점은 평가할 대목이다. 그렇다고 그와 관련한 모든 게 긍정적이진 않다. 무엇보다 유신을 통해 군국주의의 씨앗이 뿌려졌고 그 여파는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취재 계기는 유신에 대한 우리의 상투적인 인식도 있었다. 우리에게 유신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그로써 군국주의 일본이 시작됐다는 부정적 인식의 근원이다. 변혁에 성공한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만큼 부러움과 증오가 동시에 이는 건 당연하다고 하겠다. 다만 단순화는 종종 실체를 놓치기 쉽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물론 너무 민감해질 이유는 없다. 하지만 유신은 우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유신의 성공적 안착과 청일·러일전쟁의 승리를 통해 조선은 그들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더구나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한반도는 해방과 동시에 분단의 고통 속으로 떼밀렸다. 분단이 계속되는 한 유신의 부정적 유산은 여전히 한반도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상투적 인식부터 살펴보자. 부러움의 대상인 유신은 사실 그리 완벽하지 못했다. 개국, 양이(攘夷), 존왕(尊王), 막부 타도·옹호가 유신 전야까지 어지럽게 대립했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이룬 것은 시민혁명이 아니라 왕정복고였다. 교육·신분제도 등에서 혁명적인 변화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국가주의적 변혁에 그쳤다.

구니타케 마사코 나가사키대학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유신을 부러워한다는 건 난센스”라며 “자국 역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강한 자부심이 되레 부러웠다”고 말한다. 그는 “유신은 외세에 대한 일부 상층부의 대응”이었지만 “한국의 경우는 3·1운동을 비롯해 촛불데모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의지가 아래로부터 확산돼 펼쳐온 변혁의 역사”라고 평가했다.

군국주의 문제도 좀 더 치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유신을 통해 군국주의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맞지만 당시 서구열강의 위세를 감안하면 메이지정부가 군사적 팽창노선을 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보다 유신 이후 집권자들을 중심으로 평화보다 무력이 강조되는 경향이 나타나는 등 이른바 유신의 보수화문제를 먼저 따져봐야 맞다.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또 있다. 동아시아 미래와 관련된 문제다. 유신은 외세에 대응한 자존을 위한 변혁이었으나 이후 숱한 전쟁을 거쳐 최종적으론 1945년 패전으로 막을 내렸다. 바로 유신의 좌절이다. 좌절된 유신은 전후 평화헌법을 통해 가까스로 회복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마침내 동아시아의 평화가 새 비전으로 떠올랐다.

유신의 꿈은 좌절됐다가 평화국가로 거듭났는데 그 근간은 ‘전쟁포기·비무장’(9조)을 담은 일본 평화헌법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존 다우어 교수는 장 융커만의 다큐멘터리 영화 ‘일본국헌법’(2005)에서 “일본의 가장 확실한 과거반성은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9조 정신”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유신 150년을 입이 마르도록 상찬하면서도 정작 정반대로 평화헌법 개정을 독려하는 등 유신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 유신 150년이 평가되려면 가장 중요한 전제는 평화헌법 고수, 즉 9조를 지켜내려는 노력이다. 이는 일본 시민사회가 일차적으로 맡아야 할 몫이겠으나 동시에 우리의 관심도 연계돼야 할 의제다.

기획취재 보도에 앞서 유신의 현장을 두루 둘러보았지만 여러 기념관 중에서 동아시아의 미래와 연계하는 전시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일본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많이 위축돼 있는 듯했다. 어떻든 일본 정부는 내일 23일을 유신 150년 기념일로 지킨다고 한다.

조용래 대기자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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