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 칼럼] 한·미 불협화음 심상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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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성덕 칼럼] 한·미 불협화음 심상찮다

입력 2018-10-24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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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북한과 합의하고 미국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미국과 합의하고 북한을 설득하는 전략 세워야
북한 핵무기·핵시설을 제거하기 위한 실용외교를 펴고
비핵화 이후에도 한·미 관계 굳건히 해야


북한 비핵화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 간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자칫 위기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문재인정부의 비핵화 접근법은 아마추어 같은 소신 행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은 국무부 재무부 대사 대통령까지 나서 미국과 엇박자를 내고 있는 한국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느긋한 표정이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은 불안하기까지 하다.

전략적인 접근을 해도 부족한 판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최근 5·24 조치 해제 검토라는 실언을 하고 말았다. 강 장관은 말을 바꾸며 사과했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검토 사실을 부인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우리 승인(approval)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승인이라는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례와 안하무인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만한 발언을 하도록 강 장관이 빌미를 제공한 점이다. 강 장관이 영어는 잘하는지 몰라도 정무적·외교적 감각은 거의 제로임을 드러낸 사례였다. 오죽했으면 국정감사에 임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강 장관에게 질문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라고 했겠는가.

미국 재무부의 경고는 더 위협적이다. 미 재무부 관계자는 한국 7개 은행 임원과의 통화에서 “공식 발표와 언론을 통해 언급된 북한과의 금융 협력 재개가 유엔과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준수해야 할 은행의 의무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여차하면 ‘세컨더리 보이콧’을 행사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 대상인 개인 단체 기관은 물론 이들과 거래하는 3자까지 제재한다. 방코델타아시아(BDA)는 계좌에 김정일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거액이 있다는 점 때문에 제재를 받고 파산했다. 이란 핵개발과 관련해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었다.

미국은 2년 전부터 제재 수위를 높였다. 제재 대상 기업과 거래하지 않아도 내부 통제 시스템 미흡 등의 이유로 위반 가능성만 있어도 제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NH농협은행 뉴욕지점도 비슷한 사유로 1100만 달러의 과징금을 물었다. 한국 금융기관이 BDA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미국 제일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로 볼 때 제재 칼날을 쓰지 말란 법도 없다.

미국 이익에 걸림돌이 된다면,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하면 미국은 독자제재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 BDA처럼 한국 금융기관이 파산한다면 이는 국가 전체의 금융위기로 악화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설마 미국이 한국에 그런 제재를 가하겠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미 재무부에 사소한 빌미라도 줬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유럽 순방에서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설파했지만 유럽 정상들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강조했다. 미국 입장과 사실상 판박이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 의장성명도 CVID를 촉구했고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도 CVID 방식으로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야속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한 셈이다. 문 대통령의 외교적 패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순방 결과에 대해 “기대했던 것보다 잘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체 평가는 그들의 마음이지만 국제 관계와 북핵 대응이 그들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사대주의에 빠지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 핵시설, 핵물질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실용외교를 하라는 얘기다. 북한의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있는 한 남북 관계 진전은 의미가 없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북핵 폐기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과속하지 말고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제재 완화를 통한 북핵 폐기가 아니라 제재 유지를 통한 북핵 폐기의 길로 가야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시기가 내년 초로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시간과의 싸움에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 중국 러시아는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서방 세계는 비핵화 때까지 제재 유지를 원한다. 두 전선 사이에서 한국은 북한 주장에 경도된 신호를 주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 압박하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북한과 합의하고 미국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미국과 합의하고 북한을 설득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 비핵화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한·미 관계가 어그러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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